또 발생한 신안 염전노예 사건... 그런데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간다

2025-11-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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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관 직접 조사를 심각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한 나라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 가장 먼저 비치는 곳은 때때로 그 나라의 바깥일 수 있다. 한국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일을 주한 미국대사관이 직접 나서 조사하고 있다. 10년 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이 왜 반복되는지 미국이 묻고 있다. 외교적으로나 국가 위신상으로나 민망할 수도 있는 일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 18일 전남 신안 지역 장애인 단체 및 피해자 측 변호인과 면담을 진행했다. 염전주 B씨가 2014년 4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60대 지적장애인 A씨를 착취하고 9600만원 상당의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에 대한 조사였다. 광주지검 목포지청 형사2부는 준사기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법 위반 혐의로 B씨를 구속한 바 있다.

미 대사관 측은 구체적으로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2014년 염전 노예 사건 당시 이미 피해자로 확인됐던 A씨가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신안군이 2023년 염전주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뒤에도 왜 피해자가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예전부터 알려진 사건이고 한국 정부와 지자체에서 단속과 조치를 하고 있다는데 염전 노예가 왜 안 없어지는 것인지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미국이 이처럼 직접 나선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지난 4월 강제노동 의혹을 이유로 신안 태평염전 천일염의 수입을 보류하는 조치를 내렸다.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은 미국으로 수입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이 조치가 적절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가 필요했다.

미 대사관은 지난 8월에도 태평염전을 직접 방문해 근로자 계약서와 숙소 등을 조사했다. 당시 신안군 관계자는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사관은 이 점에 특히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과 현실이 다르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대사관 측은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에서 만든 '인신매매등피해자 식별 및 보호에 대한 지표'가 실제 활용되는지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지표는 인신매매나 강제노동 피해자를 신속히 발견해 구조하고 보호하기 위한 기준이다. 정부가 지표를 만들어놓고도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사관은 파악한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본국에 보낼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미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미 국무부는 이 보고서를 통해 각국을 1~3등급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2022년 이주 노동자 강제노동 등을 이유로 20년 만에 2등급으로 강등됐다가 지난해 1등급으로 복귀했다. 이번 신안 사건이 보고서에 포함될 경우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등급 하락은 단순히 명예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노동착취 문제로 한국의 등급이 또다시 하락하면 통상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미국은 신안 천일염 수입을 금지한 바 있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강제노동 의혹이 제기될 경우 유사 조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이런 우려가 나온다는 점만으로도 사안이 심각하다.

강제노동 문제는 최근 한·미 관세협상에서도 언급됐다. 미 백악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문)에는 한·미 양국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 보호를 보장하기 위해 협력하고,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은 수입 차단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은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강제노동을 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표현상으로는 "전 세계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다루고 있어 한국 내 문제도 포함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점은 10년 전 이미 알려진 문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지적장애인들이 염전에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폭행과 감금 속에 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정부는 즉각 대책을 내놓았다. 신안군도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의 착취가 계속됐다.

외교부는 미국의 조사에 대해 "미 국무부의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주한미국대사관 측이 관련 국내 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관계자들과 소통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대응 현황에 대해서는 한·미 인신매매 협의회 등 다양한 계기를 활용해 수시로 각급에서 미측과 소통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인신매매 대응을 위해 범부처 차원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공식 입장과 달리 현장에서는 10년간 같은 착취가 반복됐다. 정부가 지표를 만들고 대책을 세워도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국 대사관이 "왜 안 없어지느냐"고 물은 것은 바로 이 간극을 지적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인권 문제를 미국이 직접 조사하는 상황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다. 외교적으로 난처하고, 국가 위신도 떨어진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21세기에도 이런 착취가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이 작성할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인신매매 등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이번 기회에 10년간 결과적으로 방치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의 직접 조사가 부끄럽다면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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