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참치 아니다…고물가 시대에 무조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가성비 '국민 생선'

2025-11-2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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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기름 맛에 아삭한 식감이 특징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산시장 분위기가 달라진다.

회 자료사진 / Light Win-shutterstock.com
회 자료사진 / Light Win-shutterstock.com

비싼 고급 어종이 아니어도 제철만 되면 식감과 풍미가 정점을 찍는 생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겨울이 되면 가격·맛·식감이 동시에 급상승해 ‘알 만한 사람들’만 챙겨 먹는 생선이 있다. 평소에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한겨울만큼은 최강 가성비 횟감으로 취급되는 '가숭어'가 그 주인공이다.

가숭어는 숭어목 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이다. 한국에 서식하는 숭어 종은 숭어, 가숭어, 술립숭어, 등질숭어, 큰비늘숭어, 넓적꼬리숭어 등 종류가 많지만, 식용으로 유통되는 건 숭어와 가숭어가 대부분이다. 두 종은 생김새가 비슷해 혼동되는 경우가 많고, 방송과 뉴스에서도 호칭이 혼재되는 경우가 잦다.

가숭어라는 이름의 ‘가(假)’는 가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숭어를 닮은 생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오히려 가숭어를 참숭어라 부르고, 원래 숭어를 개숭어·보리숭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 가숭어가 맛과 식감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나면서 이름의 주객전도가 이루어진 셈이다. 표준명에는 가짜라는 의미가 붙고, 방언에는 진짜라는 의미가 붙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두 종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눈이다. 숭어의 공막이 흰색인 반면 가숭어는 노란빛을 띤다. 꼬리지느러미 모양도 다르다. 숭어는 V자형으로 날렵한 반면, 가숭어는 뭉뚝하고 일자형에 가깝다. 체형도 다르다. 가숭어는 몸이 더 길고 머리가 납작해 위에서 보면 뱀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식처 역시 다르다. 숭어는 동해·남해에 흔하지만 가숭어는 서해에 특히 많다. 세계 분포도 차이가 난다. 숭어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어종이고, 가숭어는 극동아시아 지역에 한정된다.

숭어 회 자료사진 / elephant_factory-shutterstock.com
숭어 회 자료사진 / elephant_factory-shutterstock.com

가숭어의 제철은 겨울이다. 봄(3~5월) 산란기 직전 지방이 풍부하게 오르며 맛과 감칠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한 점만 먹어도 입술이 미끄러질 만큼 기름이 깊고, 쫄깃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겨울철 돌돔과 견준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시장에서의 평가가 높다. 반면 여름철에는 최악이다. 산란 직후 살이 빠지고 부드러워지며, 서식 특성상 뻘 냄새가 강해지는 탓에 기피된다. 여름에 한번 잘못 먹으면 평생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숭어는 전북 부안, 경남 하동 지역이 대표 산지이다. 부안의 설숭어, 하동의 녹차참숭어 브랜드가 잘 알려져 있다. 하동산 가숭어는 녹차 혼합 사료를 먹여 양식하며, 비린 맛이 적고 풍미가 선명하다는 평가가 있다. 가숭어는 생명력이 강하고 양식이 쉽지만 숭어는 깊은 외해에서 산란해 인공 양식이 어렵다. 이 특징 때문에 시장에서 자연산 숭어의 비중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다.

가숭어회를 먹을 때 꼭 챙겨야 할 별미가 있다. 흔히 ‘밤’이라고 부르는 위(胃) 부위다. 가숭어는 바닥을 파고 유기물을 걸러 먹기 때문에 소화기관이 절구처럼 단단하게 발달해 있다. 꼬득꼬득한 식감이 강해 닭똥집과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회와 함께 나올 경우 기름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숭어 자료사진 / mnimage-shutterstock.com
숭어 자료사진 / mnimage-shutterstock.com

가숭어의 알은 우리나라 고급 전통 식재료 어란의 주재료로도 쓰인다. 개체 선별·혈관 제거·간장 절임·건조·압착 과정을 거쳐 수개월에 걸쳐 제조된다. 영암 지역의 어란이 유명하며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의 가라스미, 이탈리아의 보타르가와 형태는 유사하지만 모두 숭어 알로 만들며, 가숭어 알로 만든 어란은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다.

가숭어는 회뿐 아니라 해물물회, 회덮밥, 찜, 매운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돼 왔다. 강화·김포 지역에서는 손가락만 한 크기의 새끼 가숭어 ‘동어’를 굽거나 신김치에 싸 먹는 문화가 있었다. 전남 몽탄면에서는 가을 농한기에 모닥불 앞에서 가숭어를 구워 먹는 풍습이 있었고, 이 전통이 서울의 유명 삼겹살 브랜드 콘셉트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겨울 수산시장에서 가숭어는 지금 가장 변신이 극적인 생선이다. 평소에는 평범한 생선으로 취급되지만 계절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맛·식감·가격의 균형이 압도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회값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시기에는 가숭어의 존재감이 더 크다. 제철에 맞춰 제대로 손질해 먹는다면 겨울 회의 매력을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어종이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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