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마저 “그 수능 국어 문제는 오류... 정답이 2개다”

2025-11-2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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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지문 아냐” 지적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고사 자료사진. / 뉴스1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고사 자료사진. / 뉴스1

최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영역 일부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학계의 주장이 연이어 나오는 가운데 지문 자체가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수십년간 연구한 교수들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고3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문제를 풀게 하는 건 수능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거니와 반교육적이기까지 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는 사교육 등으로 익힌 문제 풀이 '기술' 덕에 수험생의 정답 적중률이 올라간 만큼, 수능 국어의 난도가 높아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학계에서 2026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 오류가 있다고 지목한 문항은 독해 능력 이론인 단순 관점에 관해 묻는 3번과 임마누엘 칸트의 인격 동일성을 다룬 17번이다.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와 포항공대(포스텍) 인문사회학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충형 교수가 각각 오류를 주장했다.

두 교수는 문항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한목소리로 "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지문이 아니다"라고 난이도의 적절성을 문제 삼았다.

이병민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능 국어 3번 문항의 정답이 두 개이고 지문에도 오류가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교수가 지목한 지문은 독해 능력을 해독과 언어 이해로 단순화해 설명한 필립 고프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전 명예교수의 '단순 관점'을 다룬 글이다.

해당 지문에는 "(단순 관점에서는) 해독이 발달되면 글 읽기 경험을 통해서도 언어 이해가 발달될 수 있으므로 해독 발달 후에는 독서 경험이 독해 능력 발달에 주요한 기여를 한다고 본다"는 문장이 나온다.

3번 문제
3번 문제

이 교수는 "단순 관점 이론에서 언어 이해는 듣기 능력을 의미한다"며 "글 읽기 경험으로 언어 이해가 향상된다는 설명은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어 이해는 말로 듣거나 글로 읽은 내용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중심 내용 파악하기, 추론하기 등을 포함한다'는 설명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이 지문을 바탕으로 출제된 3번 문항은 언어 이해가 낮은 학생 A와 해독 능력이 부족한 학생 B를 제시한 뒤 단순 관점에 따른 적절하지 않은 해석을 고르는 문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공개한 정답은 4번이지만, 이 교수는 3번도 틀린 진술이기 때문에 정답이 두 개라고 주장했다.

이병민 교수는 "4번 선택지는 아마도 출제자들이 의도한 답일 가능성이 높다"며 "출제자들은 지문을 토대로 3번도 맞는 진술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문의 단순 견해 이론에 대한 설명이 틀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3번 지문도 틀린 내용이 된다"고 설명했다.

자신 역시 3번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는 이병민 교수는 "정답에 대한 시시비비보다는 시험의 타당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이 지문은 (관련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 수준의 글"이라고 짚었다. 그는 "대학원생이 다루는 내용이 갑자기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능시험에 등장해서 논란이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학문 후속 세대나 수험생들을 위해서도 시시비비는 가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충형 교수는 한 수험생 커뮤니티 게시판에 "수능 국어 시험에 칸트 관련 문제가 나왔다고 하기에 풀어 보았는데 17번 문항에 답이 없어 보였다"고 주장했다. 17번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인격 동일성'에 관한 견해를 담은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다.

17번 문제
17번 문제

이충형 교수 역시 "지문을 이해하는 데에만 20분이 걸렸는데 이후 머리가 너무 아파 쉬어야 했다"며 "지문 속 지속성이라는 개념은 고등학생이 이해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지문 자체가 "고등학교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난이도에 대해 지적했다.

수능 국어 베스트셀러 수험서인 '언어의 기술'을 집필한 스타 강사 이해황씨 역시 17번 문항에 정답이 없다는 취지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했다.

고난도 문항으로 지목된 또 다른 문제는 12번 문항이다. 국어 영역 12번 문항은 열팽창과 관련된 여러 개념의 의미와 관계를 파악한 뒤 이를 '보기'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선형 열팽창 계수, 곡률, 최대 이동 거리, 곡률 반지름 등 개념 간 관계를 세밀하게 이해해야 하는 만큼 난도가 높은 문제로 평가됐다.

12번 문제
12번 문제

메가스터디가 집계한 예측 정답률은 24%에 그쳤다. 문항이 온라인에 공개되자 "너무 어렵다", "국어가 아니라 과학 아니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 언론사 기자가 12번 문제를 AI에 입력해 답변을 요청한 결과, ChatGPT5.1은 정답을 '5번'이라고 답했고, Gemini 2.5 Flash는 '1번'을 선택했다. 평가원이 공개한 공식 정답은 '1번'이었다. AI 모델마다 서로 다른 오답을 내놓거나 정답 여부가 엇갈리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문제 난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교육방송(EBS) 현장교사단은 이번 국어 독서 영역이 전반적으로 까다로웠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난도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한병훈 충남 덕산고 교사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제 경향 브리핑에서 "과도한 추론을 요구하는 문항은 지양됐고, 선지를 판단하는 정보가 지문에 명확히 제시돼 학교 교육에서 학습한 독해력으로 충분히 대비 가능한 수준이었다"며 "소위 '킬러문항'은 배제됐다"고 말했다.

그는 12번 문항에 대해 "킬러문항이라고 하면 교육과정 반영한 학습 활동 범주를 벗어난 과도한 추론을 요구하는 문항인데, 이 지문 관련 모든 문제는 지문에 명시적으로 표현돼 있다"며 "복합적으로 변별력 있는 문항이지만 킬러문항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제는 EBS 수능 연계교재의 '낮은 열팽창 계수를 가지는 합금' 지문을 활용한 것이다.

입시업계는 평가원이 17번을 오류로 판정내릴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한다. 수능에서 출제 오류 여부를 판단하려면 지문에 나와 있는 논리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지문만 보면 나머지 보기를 제거하고 3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당 지문은 EBS 수능 연계교재에서 다룬 '인격 동일성에 관한 논의' 지문의 주요 정보를 활용해 지문을 구성한 문항이라는 점도 연계 체감도를 높였다는 분석이다.

국어 지문 난도가 높아질수록 수험생이 글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기술에 의존함에 따라, 문해력과 사고력 측정이라는 국어 시험의 본래 취지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어 강사 출신인 구본창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연합뉴스에 "현 수능 국어는 학생들의 독해 능력을 가늠하는 기능을 못 한 지 오래"라면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80분 내 10개 이상의 지문을 읽고 45개 문제를 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지문이 어려워지니 아이들은 점점 더 학원에서의 기술 습득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 내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병민 교수도 고난도 국어 비문학 지문을 거론하며 "텍스트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정답률이 높은 이유는 아이들이 학원에서(정답 찾기) 훈련을 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제 당국이 고3 학생들에게 '난수표' 같은 글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글을 이해하기보다 답만 맞히려 한다"며 "국가시험에서 소개한 이론의 기본 정의가 잘못된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사교육으로 단련된 수험생의 실력을 가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고난도 지문을 출제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소재 국어 교사 A씨(40대)는 연합뉴스에 "요즘 아이들이 국어 1등급을 받아도 문해력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저 역시 수능 체제가 이에 일조했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5개 중 정답 1개를 고르는 객관식 시험에서 지문의 난도를 높이지 않고서 변별력을 확보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수능에서라도 변별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동점자가 많아서 폐해가 생길 수 있다"며 "수능에서 변별을 못 해 주면 대학은 대학별 고사 등 또 다른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시험한다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수능, 나아가 공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재설정해야 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제기된다.

수능과 입시 변천사를 파고든 책 '수능 해킹'의 공동 저자이자 교육 활동가 문호진씨는 "80분간 45문제를 푼다는 점, 독서(비문학)와 문학 문항의 비율이 일대일로 바뀐 점, EBS 연계율 등 수능과 관련된 대부분이 교육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 없이 결정됐다"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그는 교육정책의 '편의주의'를 비판하면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부터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단 학생들을 배제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인정하면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난 17일까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수능 문항 이의 제기를 받은 평가원은 심사를 거쳐 오는 25일 오후 5시 최종 정답을 확정해 발표한다. 올해 수능에는 지난해(342건)보다 2배 가까운 675건의 이의신청이 제기됐다. 평가원이 논란이 된 문제의 정답을 정정할 경우 수험생의 등급과 표준점수 역시 기존과는 달라진다.

앞서 평가원은 2025학년도 수능까지 총 33번의 수능 중 7번의 수능에서 9개 문항의 출제 오류를 공식 인정했다. 9건 중 5건은 과학탐구 영역에서 발생했다. 생명과학Ⅱ 2건, 물리Ⅱ 2건, 지구과학Ⅰ1건이다. 그 외에는 사회탐구 영역의 세계지리와 한국사, 국어, 영어가 각각 1건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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