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 별세...향년 91세

2025-11-2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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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데뷔 이후 방송 드라마 연극 넘나든 원로 배우

연기 열정을 평생 품어온 원로 배우 이순재가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배우 이순재 / 뉴스1
배우 이순재 / 뉴스1

연합뉴스에 따르면 25일 새벽 이순재가 별세했다.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순재는 고령에도 연극과 드라마 무대에 꾸준히 오르며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왔다.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멈추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했고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순재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어린 시절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돕던 기억과 고등학교 1학년 때 겪은 한국전쟁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말해왔다. 대학에 진학한 뒤 영화를 보며 연기에 눈을 떴고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계기로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배우 이순재 / 뉴스1
배우 이순재 / 뉴스1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이순재는 1960년대 국내 첫 동인제 극단 ‘실험극장’ 창단에 참여하며 한국 연극계에 발자취를 남겼다. 1965년 TBC 전속 배우가 되면서 방송에서도 활발히 활동했고 이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단역까지 포함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한 달에 30편 넘는 촬영을 소화한 시기까지 있었다. 1991년부터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시청률 65%라는 기록 속에서 가부장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대발이 아버지’ 역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사극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사모곡’, ‘인목대비’, ‘상노’, ‘풍운’, ‘독립문’ 등 1970·80년대 사극을 비롯해 ‘허준’, ‘상도’, ‘이산’에서는 묵직하고 깊은 연기로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이미 경지에 오른 배우라는 평가 속에서도 연기 변신을 멈추지 않았다.

배우 이순재가 2023년 10월 24일 서울 고덕동 스테이지28에서 열린 제13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에서 연극예술인상을 받은 뒤 소감을 말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배우 이순재가 2023년 10월 24일 서울 고덕동 스테이지28에서 열린 제13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에서 연극예술인상을 받은 뒤 소감을 말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70대에 들어 출연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근엄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코믹한 연기를 펼쳐 젊은 세대에게까지 팬층을 넓혔다. 이 시기 만들어진 ‘야동 순재’ 캐릭터는 당시 시트콤의 상징적 유머 코드로 자리 잡았다.

예능에서도 활력이 돋보였다. ‘꽃보다 할배’에서는 빠른 걸음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에도 무대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며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에서 다시 연극 무대에 섰고 ‘리어왕’에서는 200분 가까운 공연을 대사 실수 없이 완주해 찬사를 받았다. 2023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를 연출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민자당 중량갑 정당연설회 당시 이순재 / 연합뉴스
민자당 중량갑 정당연설회 당시 이순재 / 연합뉴스

이순재는 정치 활동도 잠시 경험했다. 그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됐고 국회에서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를 지냈다. 그러나 공직보다 연기자의 길이 더 맞는다며 이후 다시 연기 활동에 전념했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서 최근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순재는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극,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한국 대중문화사를 관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평생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그는 생의 말년까지도 스스로를 ‘현역’이라 불렀고 마지막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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