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뜻밖… 타계한 배우 이순재가 58년 전 출연했던 '초대작 영화'
2025-11-2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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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 특수효과의 지평을 연 '대괴수 용가리'
전설적 배우 이순재(91)가 25일 세상을 뜨면서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국내 공상과학(SF) 영화 '대괴수 용가리'가 온라인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후한 이미지를 가진 이순재가 젊은 시절 괴수 영화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다가오는 탓이다. 고(故) 김기덕 감독의 1967년 작 '대괴수 용가리'는 한국 영화 초창기 크리처물·판타지 장르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괴수 용가리가 판문점 부근에 불쑥 나타나 지형지물을 닥치는 대로 부수면서 몰입도가 높아진다. 서울 전역이 전율과 공포에 휩싸인다.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시청 같은 큰 건물을 무너뜨리는 괴수를 잡기 위해 군경과 과학자들이 대책을 강구하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다.



이 혼란 속에서 젊은 과학도와 그의 연인, 우주비행사가 힘을 합친다. 이들은 죽음을 무릅쓴 모험 끝에 용가리를 쓰러뜨린다는 스토리다.
이순재는 극 중 우주비행사 역을 맡았고, 당시 포스터에는 불을 뿜는 용가리 아래에서 헬멧을 쓴 모습으로 등장했다.
영화는 한국·일본·홍콩 영화계의 기술과 자본 합작품이었다. 특히 1954년 개봉돼 세계적인 히트를 친 일본 영화 '고지라'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특수촬영 기술진이 직접 한국으로 와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국산 SF 영화가 거의 없던 1960년대에 합성 기법과 미니어처를 활용한 특수촬영 기술을 전면 도입한 건 당시로서는 대담한 시도였다.




평균 제작비의 몇 배를 웃도는 3000만원의 거금이 투입됐고 높이 20m, 무게 35kg의 라텍스 생고무 괴수 용가리를 제작해 큰 화제를 모았다.
미니어처 세트를 통한 건물 파괴 신 역시 기술적 제약 속에서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구현됐다. 지금 기준으로는 어설픈 모형처럼 보이지만, 당시 관객에게는 상당한 충격과 신선함을 안긴 장면들이었다.
국내 영화계가 보유한 조명기기의 3분의 2를 끌어다 사용하는 등 물량 공세에 가까운 촬영이 이뤄졌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용가리는 불을 뿜는 데 그치지 않고 뿔에서 광선을 발사해 지프차와 전투기를 단숨에 두 동강 낸다. 특히 전투기가 쪼개지는 장면은 당시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됐다. 판문점 근처에서 솟아 나온 괴물 용가리의 위협은 6·25전쟁을 상기시키면서 1960년대 관객에게 생생한 공포감을 전했다. 이 때문에 영화는 반공영화의 대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1998년 제작된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순재는 2007년 SBS ‘신동엽의 있다! 없다?’에 출연해 이 작품에 대해 "엊그제 찍은 것 같은데 벌써 40년이 지났다"며 뭉클한 심정을 밝혔다.
그는 "그 시절에는 배우가 돈이 생기는 직업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도 아니었지만 그저 좋아서 미쳐서 시작한 것이었다"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해 배우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영화를 찾은 누리꾼들은 "정말 이순재 맞나요?", "젊을 때 모습은 좀 다르네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멋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