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을 당황하게 만들 법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2025-11-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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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종묘 인근 재개발 제한 필요”
국민의힘 지지층 46%도 “제한해야”

종묘 인근 재개발을 강행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까.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27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종묘 인근 재개발 계획과 관련해 '세계유산 종묘의 경관과 가치 보전을 위한 개발 제한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9%로 집계됐다.
반면 '도심 노후지구 재생을 위해 초고층 빌딩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22%에 그쳤다.
오 시장 지지 기반인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개발 제한이 필요하다'(46%)와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43%)는 의견이 비슷하게 나타나 지지층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 것으로 드러났다.
오 시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있는 세운4구역의 재개발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 제한을 기존 71.9m에서 141.9m로 완화하는 재정비촉진계획 결정 변경을 고시했다. 서울시는 최고 142m 높이의 업무시설과 오피스텔을 조성할 계획이다.
오 시장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주거사다리위원회 정책 토론회 후 기자들과 만나 세운4구역 높이계획 논란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 주민대표가 함께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협의체에 전문가 2명 정도가 참여하면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오 시장은 지난 18일 서울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재개발 후 3D 시뮬레이션 이미지를 공개하며 "숨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를 정도의 압도적 경관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정전 앞 상월대에서 평균 신장의 서울시민이 서서 남쪽 세운4구역을 보는 것"이라며 "정전에 서 있을 때 눈이 가려지거나 숨이 턱 막히거나 기가 눌리는가"라고 반문했다.
오 시장은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종묘를 돋보이게 할 마지막 기회"라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그는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거대한 녹지 축을 조성하고 좌우로 녹지와 고층건물이 어우러지게 복합 개발해 풍요로운 직주락 도시로 재탄생될 것"이라며 "본격적인 강북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 7일 종묘를 찾아 "종묘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한 경우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허 청장은 지난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위험에 처한 유산에 올라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유네스코는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세계유산 구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실제로 해외에는 주변 개발로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사례가 존재한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대규모 4차선 교량 건설 후 2009년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됐고,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도 주변 대규모 개발의 여파로 2021년 등재가 취소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오 시장이 종묘 주변 고층건물 건설을 강행하는 행위는 단순한 시정 오류를 넘어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위험천만한 선거 도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 시장이 종묘의 심각한 훼손 우려와 국제사회의 경고까지 무시하는 이유는 지방선거를 앞둔 조급한 정치적 욕심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며 "즉각 개발 계획을 멈추고 세계유산영향평가 절차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 시장이 과거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시대에 역행했듯이 이번에도 시대착오적인 개발 논리를 내세우며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박주민·박홍근·서영교·전현희 의원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민주당은 "종묘 일대를 단순한 재개발 구역이 아닌 역사·문화특화지구로 육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영교 의원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세운4구역 재개발의 개발 이익이 최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이 한호건설에 돌아가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오 시장이 재보궐선거로 입성한 2022년 이후부터 세운3구역과 6구역 재개발 시행사였던 한호건설이 자회사 명의로 4구역 토지를 집중 매입했다"며 "민간 건설사가 토지 10%로 개발 이익 30% 가까이를 챙기는데도 서울시가 초과이익을 환수할 장치를 만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달 중 종묘를 세계유산지구로 정식 지정하고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강력히 요청할 예정이다.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세계유산 분과는 지난 13일 종묘를 중심으로 총 91필지, 19만4089.6㎡ 규모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고고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등 역사유산 관련 29개 학술단체와 6개 협회도 서울시의 종묘 인근 고층 재개발 시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긴급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서울 도심 종묘가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주변 난개발을 자제하면서 경관과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고층 개발은 세계유산을 바라보는 경관과 세계유산에서 사방을 바라보는 경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유네스코는 올해 4월 서울시에 재정비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세계유산지구 밖에 위치해 법령상 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며, 종묘 경계선에서 170~190m 바깥에 있어 개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4~26일 만 18세 이상 국민 1003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