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살아온 거 같아, 힘든 군 생활 해볼게요” GOP 택한 아들, 주검으로 돌아왔다

2025-11-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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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부모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해달라”

GOP에서 세상을 떠난 병사의 추모비가 건립됐지만, 유가족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30일 연합뉴스는 고 김상현 이병의 3주기를 맞아 고인의 부모님 인터뷰를 전했다.

지난 28일 아들의 추모비 앞에 선 김기철 씨와 나미경 씨는 "다시금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추모비가 세워진 곳은 아들이 숨진 바로 그 자리다. 이는 유족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김 이병이 군 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는 어느덧 3년. 육군 일반전초(GOP)에 배치된 지 한 달 만에 간부와 선임병들의 지속된 가혹행위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추모비에는 ‘존중·배려 기원’이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다. 김 씨 부부는 “정신교육보다 더 강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병사들이 현실의 비극을 직접 보고 경각심을 갖길 바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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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이 GOP 지원 의사를 밝혔던 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왜 그렇게 힘든 곳을 가느냐”고 나무랐지만, 아들은 “쉽게 살아온 것 같아 힘든 군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에 못마땅함과 대견함이 동시에 교차했던 그는, 아들이 원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못하고 싫은 소리도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떠올렸다.

다섯 살부터 중국에서 자란 김 이병에게 한국어는 능숙하지 않았다. 선임병들은 김 이병의 말투가 웹 애니메이션 속 한 캐릭터와 겹쳐 보인다며 놀리곤 했다.

김 이병은 2022년 9월 입대해 다음 달 GOP 부대로 전입된 뒤, 그는 경계근무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강압적 교육과 질타에 시달렸다. 당시 북한 미사일 발사로 경계 태세가 격상되며 신병 교육 기간이 사실상 사라졌지만, 누구도 그에게 배려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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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선임병이던 김 모 씨는 사건 당일 저녁, 경계근무 중이던 김 이병에게 전화를 걸어 수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캐물으며 “막사로 와라, 제대로 말 못 하면 각오하라”고 협박했다. 남쪽 경계 담당 선임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음에도 책임은 온전히 김 이병에게 돌아갔다. 그 통화를 한 지 40분쯤 지난 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총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조사에서 부대 내 괴롭힘이 상시화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사 민 모 씨는 그의 말투를 흉내내며 조롱했고, 선임병 송 모 씨는 GOP 근무 내용을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고 꾸짖으며 반복적으로 압박했다. 근무 중 실수는 ‘실수 노트’에 적어 제출해야 했고, 같은 내용을 쓴 날에는 “똑같이 쓰면 진짜 죽는다”는 위협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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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해자들은 모욕·강요·협박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김 모 씨는 징역 6개월, 민씨는 징역 4개월, 송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올해 10월 확정됐다. 그 사이 김 이병은 사망 2년이 지나서야 순직 인정을 받았으며,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망 지점에 지난 10월 28일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듬해 겨울까지 냉동 상태로 머물러야 했던 그는 그제서야 영면의 절차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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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은 가해자들이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아버지는 “혹시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그런데 법정에서 보니 상황이 전혀 달랐다”고 전했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며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고 한다.

사건 이후 그는 TV에서 군인이 나오면 즉시 채널을 돌린다. 길거리에서 군인만 마주쳐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아들이 불쑥 들어와 “엄마 잘 잤어?” 하고 안아줄 것만 같아 하루를 버티는 일조차 버겁다. 약에 의존하는 나날이 길어졌고, 같은 아픔을 겪는 다른 유가족들도 비슷한 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은 위로보다 더욱 큰 무게로 다가왔다.

혹시 잠결에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집을 1층으로 옮기기까지 했다는 김씨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아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근무에 나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훈련보다 먼저 챙겨야 하는 건 사람 생명”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매뉴얼 교육을 완전히 이수한 뒤 현장에 투입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사고가 나고 나서야 인원이 부족했다, 훈련 때문에 바빴다는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국방부가 병영 부조리를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며 “나라가 책임지고 데려간 청년이 열 손가락 멀쩡히 붙어 있었으면, 그 모습 그대로 집에 돌려보내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home 김민정 기자 wikikmj@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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