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사연 읽는 맛 있었는데…잡지 ‘샘터’ 관련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2025-12-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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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최인호·법정 스님 등 연재로 사랑받았던 월간지
국내 최장수 교양지 ‘샘터’가 내년 1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종이 잡지가 지금처럼 귀하지 않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집에 ‘샘터’ 한 권쯤은 있던 풍경이 낯설지 않다. 정기구독으로 매달 들어오기도 했고 동네 책방이나 역 가판대에서 사 와 거실 탁자 한쪽에 자연스레 놓이던 잡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기억이 없어도 독자 사연이나 짧은 수필 몇 편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와서 남의 일상을 읽다가 괜히 고개 끄덕이거나 기분이 풀리는 순간이 있었다.
부모가 읽던 샘터를 옆에서 따라 넘겨보며 글맛을 배운 사람도 있고 시험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펼쳐 들었다가 한 편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렇게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의 틈을 채워주던 잡지가 내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출판사 샘터사는 오는 24일 발간되는 2026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월간 ‘샘터’를 무기한 휴간하기로 결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종이 잡지의 제작과 유통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환경을 고려한 조치다.
보도에 따르면 샘터의 휴간 배경에는 스마트폰이 종이책을 빠르게 대체하고 영상 콘텐츠 소비가 활자 미디어 수요를 크게 앞서는 흐름이 지속된 점이 자리한다. 종이 잡지 시장 전반이 축소되는 가운데 정기구독과 판매 부수가 줄어들며 누적된 수익 악화를 견디기 어려웠다는 판단이 더해졌다.
‘샘터’는 1970년 4월 창간된 국내 최장수 교양지로 알려져 있다. 창간인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창간호에서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되겠다는 뜻을 전했고 잡지는 그 취지 아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연을 꾸준히 실어 왔다. 지금까지 지면에 소개된 독자 사연은 1만 1000여 건에 이른다.
샘터 지면은 당대 유명 문인들의 글로도 오랜 시간 채워졌다. 수필가 피천득과 소설가 최인호 아동문학가 정채봉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장영희 교수 등이 장기간 연재와 기고를 이어가며 잡지의 상징적인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 연재 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34년간 이어졌고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은 1980년부터 16년 동안 실리며 많은 독자에게 위로와 사색의 언어를 전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이 대학 졸업 후 샘터 편집부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샘터가 가장 큰 전성기를 누린 시기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으로 꼽힌다. 당시 저렴한 가격과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앞세워 월 50만 부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기’ 공모에는 한 달에 1만여 통의 편지가 몰릴 정도로 독자 참여도 활발했다. 생활 속 작은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는 편집 방향이 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종이 잡지의 기반이 흔들렸고 샘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자금난을 겪어 왔으며 창간 50주년을 앞둔 2019년에는 한 차례 휴간을 공언했다가 애독자들의 기부와 응원 기업 후원 등을 바탕으로 발행을 재개했다. 이후에도 구독률 하락과 판매 감소가 이어지며 6년 만에 다시 무기한 휴간 결정을 내리게 됐다.
월간지는 멈추지만 샘터사의 단행본 발행은 계속된다.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물질과 성공만을 좇기보다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중시해 온 샘터의 정신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겠다고 했고 언젠가 다시 독자들에게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