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군의 작은 날갯짓, 대한민국 규제 지도를 바꾸다

2025-12-25 03:29

add remove print link

인구 소멸 위기 속, 돈 한 푼 안 들이고 기업 살려낸 ‘0원 행정’의 기적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인구가 절반 넘게 사라진 작은 시골 군(郡). 소멸의 위기 앞에서, 이들이 꺼내 든 생존을 위한 비장의 무기는 거대한 예산이 아니었다. 바로, 낡고 불합리한 ‘규칙’의 벽을 허무는 용기였다. 전남 함평군이 돈이 아닌 ‘생각의 전환’으로 기업을 살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법을 바꾸는 놀라운 ‘나비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돈이 아닌 ‘생각’으로 위기를 돌파하다

함평군은 한때 10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3만 명 선으로 쪼그라든, 전형적인 인구감소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개발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함평군은 이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돈을 쓰지 않고, 우리가 가진 ‘권한’만으로 지역을 살릴 방법은 없을까?” 그 해답이 바로, 현장의 목소리를 막고 있던 ‘규제’의 빗장을 푸는 것이었다.

#‘10%의 기적’, 공장의 벽을 허물다

가장 극적인 성공 사례는 ‘농공단지 건폐율’ 문제였다. 국가산단이나 일반산단보다 유독 농공단지에만 엄격하게 적용됐던 70%의 건폐율. 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공장을 더 넓게 짓고 싶어도 법이라는 벽에 막혀 발이 묶였다. 함평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업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모아, 중앙부처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 끈질긴 설득은 마침내, 전국의 모든 농공단지 건폐율을 80%로 상향하는 법 개정을 이끌어내는 기적을 낳았다. 함평의 작은 목소리가, 전국에 약 784만㎡(237만 평)의 새로운 공장 부지를 선물한 셈이다.

#벌금 대신 ‘기회’를, 기업을 살린 따뜻한 행정

함평의 규제혁신은 차갑지 않다. 한 신기술 비료 업체가 품질 검사 문제로 6개월 영업정지라는,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받았을 때, 함평군은 법 조항 뒤에 숨지 않았다.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처벌이 능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수차례의 청문과 법리 검토 끝에, 영업정지를 최소한의 과징금으로 대체하는 ‘묘수’를 찾아냈다. 벼랑 끝에 몰렸던 기업은 다시 기계를 돌릴 수 있었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지켰다. ‘처벌’이 아닌 ‘해법’을 찾아준 행정이 기업 하나를 살려낸 것이다.

#상으로 증명된 ‘함평의 방식’, 혁신은 계속된다

함평의 남다른 행보는 외부의 인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2년간 전라남도와 행정안전부의 규제혁신 평가에서 연달아 상을 휩쓸었고, 특히 농공단지 건폐율 완화 사례는 ‘전국 최우수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함평의 방식’이 일회성 쇼가 아닌, 지속가능한 시스템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상익 함평군수는 “규제혁신은 기업과 주민이 ‘떠나지 않고 머물게 하는 힘’”이라며 “앞으로도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듣고, 기업과 주민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강한 함평’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home 노해섭 기자 nogary@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