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25분의 1로 뚝, 주행거리는 쑥… SK온·서울대 '꿈의 기술' 입증

2026-01-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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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륨 기반 전략으로 풀린 하이니켈 양극재의 숙제

SK온이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연구팀과 함께 차세대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단결정 양극재 개발의 난제를 해결하고 관련 기술을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게재하며 기술적 우위를 입증했다.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전기차 시장의 핵심 경쟁력은 주행거리와 안전성이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배터리 업계는 양극재 기술 고도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핵심 소재다. 지금까지 업계는 주로 다결정(Polycrystalline) 양극재를 사용해 왔다. 다결정은 작은 입자들이 포도송이처럼 뭉쳐 있는 구조다. 배터리를 충전하고 방전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이 입자 덩어리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균열은 곧 가스 발생으로 이어지고, 이는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화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단결정(Single-crystalline) 양극재는 이러한 구조적 취약점을 극복할 대안으로 꼽힌다. 하나의 거대한 입자가 단일 구조로 되어 있어 균열이 잘 생기지 않는다. 내부 가스 발생이 적어 배터리 수명이 길고 화재 위험도 낮다. 문제는 만드는 과정이 극도로 까다롭다는 점이다. 입자를 크고 고르게 키우려면 높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열을 가해야 한다. 특히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니켈 함량을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의 경우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화학적 결함이 발생한다. 리튬 이온과 니켈 이온의 자리가 뒤바뀌는 양이온 무질서(cation disorder) 현상이다. 이온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섞이면 전기가 흐르는 통로가 막혀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SK온과 서울대 강기석 교수 연구팀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 난제를 풀었다. 리튬을 처음부터 넣는 대신 나트륨을 활용하는 우회 전략을 썼다. 연구팀은 나트륨 기반의 전구체를 먼저 합성했다. 나트륨은 구조적으로 안정성이 뛰어나고 결정 성장이 쉽다.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단결정 구조를 먼저 튼튼하게 지은 뒤, 특수 공정을 통해 나트륨을 리튬으로 맞교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 구성 물질만 배터리에 필요한 리튬으로 완벽하게 치환한 것이다.

이 새로운 합성법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일반적인 양극재 입자보다 2배 가까이 큰 10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대형 단결정 입자를 만들어냈다. 통상 입자가 커질수록 구조적 불안정이 커지지만, 이 방식은 예외였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양이온 무질서 현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니켈 함량이 94%에 달하는 울트라 하이니켈 사양임에도 구조는 완벽에 가까웠다.

성능 수치는 기술의 진보를 증명한다. 연구팀의 테스트 결과 기존 다결정 양극재 대비 가스 발생량이 2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화재 위험의 주원인인 가스 발생을 원천적으로 억제한 셈이다. 에너지 밀도 역시 이론적으로 구현 가능한 최대치의 77%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같은 크기의 배터리로 더 멀리 가는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기계적 내구성도 확보해 외부 충격이나 장기간 사용에도 성능 저하가 적다.

‘네이처 에너지 (Nature Energy)’에 실린 SK온과 서울대학교의 고밀도 단결정 양극재 연구 논문 / SK 이노베이션 뉴스룸
‘네이처 에너지 (Nature Energy)’에 실린 SK온과 서울대학교의 고밀도 단결정 양극재 연구 논문 / SK 이노베이션 뉴스룸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실험실 수준의 성공을 넘어 상용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네이처 에너지에 논문이 게재된 것은 학술적으로 그 원리와 효과를 전 세계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SK온은 이번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후속 연구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단순히 단결정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다른 단결정 입자들을 최적의 비율로 섞어 빈 공간을 메우는 기술도 검토 중이다. 큰 돌 사이에 작은 자갈을 채워 넣듯 양극재의 밀도를 극한으로 높여 배터리 용량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배터리 시장은 중국의 물량 공세와 기술 추격으로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저가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살길은 결국 압도적인 기술 격차다. 하이니켈 양극재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안전성까지 확보한 이번 기술은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박기수 SK온 미래 기술원장은 이번 성과가 SK온의 기술 경쟁력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계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혁신적인 연구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업의 자본과 대학의 연구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이번 성과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모범적인 산학협력 모델로 기록될 전망이다.

home 조희준 기자 chojoo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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