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찍고 SK가 베팅한 '이것'…10년 만에 美 빗장 풀렸다
2026-03-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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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첨단 원전 승인, 한국 기업들 글로벌 에너지 시장 선점
SK이노베이션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분 투자한 미국 테라파워가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승인을 받아내며 차세대 에너지 시장 선점을 위한 실전 단계에 진입했다. 미국 내 상업용 첨단 원전 건설 허가는 10년 만에 처음이며 차세대 기술을 적용한 SMR로는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승인에 따라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 지역에 세계 첫 상업용 SMR 플랜트를 짓는다. 2030년 실증로 가동을 목표로 잡았다. 규제 당국이 테라파워 기술의 안전성과 완성도를 공식 인정한 결과다. 글로벌 SMR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한국 기업들의 행보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원전 혁신 기업이다. 핵심 기술은 소듐냉각고속로(SFR,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4세대 원자로) 방식이다. 물을 냉각재로 쓰는 기존 원전과 달리 끓는점이 880도에 달하는 액체 나트륨을 활용한다. 냉각재가 끓어 넘칠 위험이 적고 대기압 상태에서 운전이 가능해 안전성이 높다. 발전 효율을 끌어올리면서 사용 후 핵연료 발생량을 기존 대비 10% 수준으로 낮추는 경제성까지 확보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한 운전 방식도 강점이다. 전력 수요 변화에 맞춰 발전량을 조절하는 부하 추종 운전이 가능하다. 출력이 일정하지 않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가진 간헐성(에너지가 연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특성)을 보완하는 데 최적화된 설계다.
SK그룹은 일찌감치 이 기술의 가치에 주목했다. 2022년 8월 SK㈜와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에 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2023년에는 한국수력원자력까지 합류해 3사 간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십 년간 쌓아온 원전 건설 및 운영 노하우와 SK의 사업 기획력이 결합해 글로벌 SMR 공급망을 장악한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협력은 인공지능(AI) 산업 폭증과 맞물려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 탄소 중립을 유지하면서도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테크 기업들에게 SMR은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에너지 확보를 AI 산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AI 데이터센터와 발전소를 함께 짓는 통합 설루션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의장과도 직접 만나 SMR을 포함한 차세대 에너지 협력을 공고히 했다. 그룹 차원에서 단순히 에너지를 구매하는 단계를 넘어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공급하는 패권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건설 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업계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반겼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는 이달 중 즉각적인 착공에 들어갈 뜻을 밝혔다. 한국 측 파트너인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 설루션 사업단장 역시 이번 승인을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데이터센터 현장에 최적화된 에너지 공급망 구축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글로벌 SMR 시장은 2035년까지 연간 수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입지 선정이 자유로운 SMR의 특성상 도심 인근이나 산업 단지 밀착형 발전소로 활용도가 높다. SK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미국 실증로 건설 참여를 발판 삼아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시장 수출 전선에 나선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한국형 SMR 연합군의 공세가 본격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