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은 물론 2시간 웨이팅…120년 전통 '광장 시장'의 모습이 달라졌다
2026-04-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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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시장, MZ세대 핫플레이스로 거듭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광장시장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뒤로하고 MZ세대의 새로운 놀이터이자 '팝업 스토어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어르신들의 먹거리 장터나 포목점으로 인식되던 이곳은 최근 유명 식음료 브랜드부터 패션, 명품 브랜드까지 앞다투어 찾아오는 가장 뜨거운 마케팅 현장이 됐다.

광장 시장은 왜 팝업 성지가 되었을까
광장시장이 팝업 성지로 본격 주목받은 것은 2023년 5월 제주맥주의 '제주위트 시장-바' 팝업스토어가 촉발점이 됐다. 제주맥주는 성수동이 아닌 전통시장을 첫 팝업 무대로 선택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팝업은 광장시장 내 박가네 빈대떡, 와인 바 히든아워, 식료품 가게 365일장과 손잡고 노점부터 루프탑 바까지 시장 전체를 제주맥주 감성으로 브랜딩했다. 약카롱, 빈대떡 꼬치 모듬인 '시장카세' 등 할매니얼 감성의 메뉴를 앞세워 약 3주 만에 5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았고, 인스타그램 관련 해시태그만 1만 건 이상이 노출됐다.
이후 광장시장 팝업은 보다 세분화된 '덕후 문화'와 결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2025년 3월에는 4년간 전국 700여 곳의 김밥집을 돌아다닌 김밥 큐레이터 정다현 씨가 '김밥팝업'을 광장시장 365일장 앞에서 열었다. 경기 군포의 미나리삼겹살김밥, 제주의 은갈치김밥, 강원 속초의 명란김밥, 부산의 불닭유부팽이김밥 등 전국 팔도의 이색 김밥을 한자리에 모은 이 팝업은 오전 8시부터 웨이팅이 생기고 2시간 대기줄이 이어질 만큼 큰 반응을 얻었다.

같은 해 겨울에는 한남동 굴 전문점 '방울과꼬막'의 사장이 기획한 '굴아저씨' 팝업이 동일한 365일장 자리에서 시즌제로 열려 화제를 모았다. 노상에서 제철 굴에 샬롯비네거를 곁들이고, 아시아 베스트 50 바로 선정된 한남동의 바 소코(SOKO)가 매주 게스트 바텐딩을 진행하는 구성이 입소문을 탔다. 단순한 먹거리 팝업을 넘어 미식과 바 문화, 로컬 스토리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다.
꼬리를 잇는 팝업의 향연
제주맥주의 성공 이후, 전통주 브랜드 맵시, 중식 주점 용용선생이 팝업스토어를 열며 호응을 얻었고, Z세대의 인기 외식 브랜드 효뜨와 제로햄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시장 내부에서도 자생적인 변화가 이어졌다. 2024년 기준 5,628개 점포 중 개점 순서 1번 자리에 카페 '일호상회'가 들어섰고, 제주 베이커리 아베베, 경주십원빵, 거문도 쑥으로 만드는 쑥스초코파이 등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MZ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에 소개된 고향칼국수는 190여 개국에 방영된 이후 외국인 손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글로벌 명소가 됐다.
성수동 같은 세련된 팝업 전용 공간을 두고 기업들이 굳이 전통시장을 선택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로컬 힙(Local Hip)'과 원본성이다. 성수동이 연출된 로컬이라면 광장시장은 12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진짜 로컬이다. 오래된 간판과 시장 특유의 활기가 브랜드 이미지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분위기는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다.
둘째, 압도적인 유동인구다. 하루 평균 외국인 방문 비중이 30%에 달할 만큼 다양한 연령대와 국적이 한데 섞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타겟뿐 아니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셋째, 먹거리 인프라와의 시너지다. 빈대떡, 육회, 꽈배기 등 강력한 먹거리가 이미 갖춰져 있어 팝업 방문이 단순한 구경을 넘어 하나의 '나들이'가 된다.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브랜드 경험의 밀도도 높아진다.
F&B 트렌드가 광장시장과 만나는 지점
광장시장 팝업의 부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재 F&B 업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2025년 F&B 트렌드의 첫 번째 축은 '경험 소비의 심화'다. 음식은 이제 공간·스토리·인증샷을 포함한 콘텐츠가 됐으며, 팝업스토어도 단순 이벤트를 넘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채널로 자리잡았다. 수많은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있고 이미 국내 인구의 80% 가까이가 한 번 이상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포화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만이 살아남는다.
두 번째 축은 'K-푸드의 장르화'다. K-예능과 OTT 콘텐츠를 통해 확산된 음식은 해외에서 먼저 수요가 형성되고, 다시 국내 전략으로 역유입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2024년 K-푸드 수출액은 70억 달러(약 10조 원)로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 레스토랑 100곳'에 한식당이 7곳이나 이름을 올린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광장시장의 마약김밥과 녹두빈대떡이 해외에서 유명해지고 외국인 관광객이 역으로 몰려드는 현상은 이 구조의 산물이다.
세 번째 축은 '로코노미(Loconomy)'의 부상이다. 지역의 고유한 매력을 극대화해 브랜드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이 전략은 2025년 외식업계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실제로 전통시장의 변화도 수치로 확인된다. 2025년 전통시장 매출액은 2022년 대비 16% 증가했고, 특히 커피·음료(40%), 분식·간식(35%) 업종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단순한 장보기 장소에서 F&B 경험의 목적지로 전통시장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아슬아슬한 상생

광장시장의 변신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팝업 스토어가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상승하고, 기존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 잠식되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성수동이 겪은 전철(팝업 성지가 된 후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광장시장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 불거진 일부 점포의 바가지 요금 논란은 시장의 신뢰도에 타격을 줬다.
팝업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그 팝업이 성공한 것은 기존 시장 상인들과 협업하고, 시장 문화 자체를 브랜딩의 재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팝업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팝업을 품는 구조, 이 방향성이 지속 가능한 광장시장 모델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