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병도 낫게 한다는 루마니아 술? 한국과는 달랐던 음주 예절과 술 문화

2026-04-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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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기 전에는 술 문화도 루마니아와 완전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술이 사람을 이어준다는 점은 닮았고 예절과 분위기는 놀랄 만큼 달랐다.

자두 가지와 자두 브랜디 한 잔이 놓인 화이트 배경 / 셔터스톡
자두 가지와 자두 브랜디 한 잔이 놓인 화이트 배경 / 셔터스톡

루마니아에도 한국 못지않게 강한 술 문화가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여름이 되면 맥주와 바비큐가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아주 익숙하다. 하지만 루마니아 술 문화를 이야기할 때 더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Țuică(추이커) 혹은 Răchie(러키에) 같은 전통 증류주다. 보통 자두나 살구로 만드는 집술인데, 도수는 소주보다 훨씬 세다. 보통 30~40도 정도지만, 집에서 만든 술은 더 독해서 60도, 심지어 70도 가까이 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처음 한국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꽤 놀랐다. 소주가 강한 술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루마니아식 증류주와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편에 가깝다.

술을 따라주는 예절은 한국과 닮아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루마니아와 한국이 술을 대하는 기본 예절에서는 닮은 점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루마니아에서도 누군가와 술을 마실 때, 특히 상대가 손님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내가 술을 따라주는 것이 예의에 가깝다. 단순히 각자 자기 잔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술을 함께 나누고 상대를 챙기는 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처음 술자리 예절을 접했을 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술은 함께 마시는 것이고, 예의가 따른다”는 감각은 꽤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 나를 당황하게 만든 차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술을 마실 때의 자세였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술을 마실 때 몸을 약간 돌리거나 고개를 살짝 피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 그런데 루마니아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상대를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고, 정면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 와서 이 규칙을 알기 전까지는 여러 번 무심코 반대로 행동하곤 했다.

태양의 황금빛이 친구들 사이에서 경쾌한 토스트를 향상시키며, 그들의 음료는 빛난다 / 셔터스톡
태양의 황금빛이 친구들 사이에서 경쾌한 토스트를 향상시키며, 그들의 음료는 빛난다 / 셔터스톡

추석날, 친구 아버지 앞에서 내가 실수한 이유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추석 때였다. 나는 한국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갔고, 그 자리에서 친구의 아버지에게 루마니아 술을 한 번 드셔보시겠냐고 권했다. 분위기는 좋았고, 나도 괜히 들떠 있었다. 그래서 잔을 들고 평소처럼 똑바로 상대를 바라보며 건배를 하려 했다. 그런데 친구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정면을 보고 마시는 것이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순간 너무 민망했지만, 동시에 정말 재미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그게 오히려 정중한 태도였는데, 한국에서는 정확히 반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샷, 루마니아는 천천히

술을 마시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느껴졌다. 한국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신다는 이미지가 강하고, 실제로도 술자리가 사회생활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많은 한국 친구들이 생각보다 빨리 취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도 원샷 문화가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술을 한 번에 털어 넣는 분위기가 자연스럽다 보니, 속도도 빨라지고 취기도 빨리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루마니아는 조금 다르다. 우리 전통 술은 도수는 훨씬 높지만, 그렇다고 꼭 급하게 마시는 술은 아니다. 특히 Țuică는 식사 전에 마시는 아페리티프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식욕을 돋우기 위해 조금씩 천천히 마시는 술이지, 무조건 한 번에 넘기는 술은 아니다. 그래서 술 자체는 훨씬 세지만, 마시는 리듬은 오히려 더 느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소주 한 잔 / 셔터스톡
소주 한 잔 / 셔터스톡

루마니아에서는 술이 때로는 민간요법이 되기도 한다

내가 한국 친구들에게 가장 설명하기 어려웠던 건, 루마니아에서는 이런 술이 단순히 “취하려고 마시는 술”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내가 자란 집에서는 전통 증류주가 집안의 민간요법 같은 역할도 했다. 어릴 때 열이 심하게 났을 때 할머니는 술에 수건을 적셔 이마와 팔다리에 올려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강렬한 기억인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또 겨울에는 이 술을 후추나 호두, 꿀과 함께 따뜻하게 데워 마시기도 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몸을 데우는 집안식 방식이었던 셈이다.

한국 친구는 웃었지만, 다음 날 반응은 달랐다

물론 이것이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루마니아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생활의 지혜, 혹은 민간요법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래서 한국 친구 한 명이 목이 아프다고 했을 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루마니아에서는 이럴 때 추이커를 조금 마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친구는 처음엔 정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픈데 왜 술을 마시냐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조금 마셔본 뒤 다음 날 “신기하게 목이 좀 괜찮아진 것 같다”고 말해 우리 둘 다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정말 약처럼 ‘효과가 있었다’는 결론보다도, 한 나라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상식이 다른 나라에서는 완전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루마니아 전통주 / 셔터스톡
루마니아 전통주 / 셔터스톡

닮았지만 다른 두 나라의 술 문화

결국 한국과 루마니아의 술 문화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꽤 다르다. 둘 다 술을 통해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술자리를 단순한 음주 이상의 관계의 자리로 여긴다는 점은 닮았다. 하지만 한국은 더 규칙이 분명하고, 더 조심스러운 예절이 살아 있으며, 때로는 더 빠른 속도로 술이 오가는 문화처럼 느껴진다. 반면 루마니아는 더 정면을 바라보고, 더 직접적으로 건배하며, 술이 가족의 전통과 생활의 기억 속에 조금 더 깊게 들어와 있는 쪽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추석날 친구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잔을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예의였던 행동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조심해야 할 행동이었다는 사실. 그 짧은 순간 덕분에 나는 술 문화가 단순히 무엇을 마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어떤 자세로 마시는지, 누구에게 먼저 잔을 채워주는지, 얼마나 빨리 마시는지, 술을 어떤 의미로 기억하는지까지 모두 그 사회가 관계와 존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술은 어디서나 사람을 이어주지만, 그 방식은 나라별로 전혀 다를 수 있었다.

home 오아나 기자 oana11@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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