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서 ‘기적’ 일군 김상욱, 단숨에 대선주자급 부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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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서 뚜렷한 자기 서사 확보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가 울산 남구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 뉴스1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가 울산 남구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 뉴스1

국민의힘으로 정치에 입문해 '배신자' 낙인까지 감수하며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보수 텃밭 울산에서 현직 시장을 꺾어낸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인. 만 46세에 민선 9기 최연소 광역단체장이 된 그는 앞으로 어떤 정치 행보를 선보일까. 향후 울산 시정을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 국면에서 주목받는 주자로 부상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 당선인은 6·3 지방선거에서 48.73%(28만5294표)를 득표해 45.74%(26만7789표)를 얻은 김두겸 국민의힘 후보를 1만7505표 차로 눌렀다. 박맹우 무소속 후보는 5.52%(3만2363표)에 그쳤다. 민주당 소속 울산시장은 2018년 송철호 전 시장 이후 8년 만이다.

이번 당선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의 결과다. 1980년 경북 의성 출신인 김 당선인은 고려대 법학과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울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울산 남구갑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남구갑은 국민의힘 내에서 '양지'로 불릴 만큼 보수 성향이 짙은 지역구였다. 변호사 출신 정치 신인이 국민의힘 국민추천제로 발탁돼 여의도에 입성한 것 자체가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치 입문 6개월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2024년 12·3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당과 균열이 시작됐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찬성하는 등 주요 현안마다 국민의힘 당론과 엇박자를 냈다. 결국 지난해 5월 탈당해 민주당에 합류했다. 자신을 정치판에 불러들인 국민의힘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말을 듣고, 민주당 안에서도 두터운 지지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로 지난 2월 울산시장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김 당선인은 이선호 전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 안재현 전 노무현재단 울산지역위원회 상임대표를 상대로 과반 득표로 본선 직행 티켓을 따냈다. 본선에서는 김종훈 진보당 후보, 황명필 조국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뤄냈다. 특히 진보당과의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역선택 방지조항 누락'을 문제 삼아 경선 중단을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으나, 김종훈 후보가 역선택 방지조항 누락을 이유로 요구한 재경선을 받아들이면서 경선이 다시 치러졌고, 결과적으로 김 당선인이 범진보 단일 후보로 확정됐다. 보수 진영에서는 박맹우 울산시장이 무소속으로 완주하며 표가 갈렸다. 단일화 효과와 보수 표 분산이 맞물리며 현직 시장을 상대로 뒤집기에 성공했다.

주목할 것은 승리의 구조만은 아니다. 국민의힘 출신 변호사가 계엄 반대라는 소신 하나로 당적을 바꾸고, 보수세가 강한 울산에서 광역단체장으로 우뚝 섰다는 서사 자체가 이미 정치적 자산이다. '배신자' 프레임을 울산 시민의 투표로 정면 돌파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민주당이 울산을 탈환했다는 사실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민주당이 영남권에서 이처럼 뚜렷한 자기 서사를 가진 광역단체장을 확보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영남권 교두보를 공식화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당내 수요와도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더해진다. 1980년생으로 민선 9기 광역단체장 가운데 가장 젊다. 정치 입문 2년 만에 광역단체장에 오른 속도감, 험지 생환의 서사, 영남 기반이라는 희소성이 합쳐지면서 차기 대선 국면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조건이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의힘 출신이라는 이력이 오히려 중도·보수 유권자에게 가닿는 서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도 민주당 안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노동 중심 산업 인공지능(AI) 전환', '동북아 에너지·물류 허브', 시내버스 정상화, 부산·울산·경남 행정통합 논의 주도 등 공약으로 내건 과제들을 4년 임기 안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구현해내느냐가 그의 정치적 체급을 결정한다. 현 시장이 추진해온 대형 현안 사업에 줄곧 부정적 입장을 취해온 만큼 취임 초반부터 굵직한 현안 처리가 기다리고 있다. 광역단체장 자리가 '대선 발판'이 되려면 시정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건 역대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준 조건이다.

김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시민들이 보내주신 압도적 지지는 쉬운 길을 가라는 허락이 아니라, 험하더라도 시민주권 실현이라는 옳은 길을 걸어가라는 준엄한 명령"이라며 "시민의 발인 시내버스 정상화, 비리와 의혹이 지목된 행정 문제를 고쳐가는 일을 바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행보보다 시정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히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이미 그의 다음 행보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