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나주에서 조선과 프랑스가 만났다…역사만화 '나르발호 표류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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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보다 15년 앞선 한불 첫 외교 접촉…전통주와 샴페인 나눈 평화로운 만남을 만화로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1866년 병인양요를 먼저 생각한다.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고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그 사건. 혹은 1886년 체결된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양국 공식 외교관계의 시작으로 알고 있다.

나주시가 이 잊혀진 역사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역사만화 '나르발호 표류기'로 펴냈다. / 나주시
나주시가 이 잊혀진 역사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역사만화 '나르발호 표류기'로 펴냈다. / 나주시

◆우리가 몰랐던 한불 첫 만남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앞서, 갈등이 아닌 따뜻한 환대로 이루어진 첫 만남이 있었다. 1851년 전라도 나주목 관할 해역에서였다. 그리고 그 만남의 자리에는 조선의 전통주와 프랑스 샴페인이 함께 놓여 있었다.

나주시가 이 잊혀진 역사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역사만화 '나르발호 표류기'로 펴냈다. 지난 10일 출간된 이 책은 한불 교류사의 새로운 첫 장을 대중에게 알리는 시도다.

◆좌초된 포경선이 역사를 만들다

1851년 4월 2일,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Narval)가 전라도 나주목 관할 해역인 현재의 신안군 비금도 인근에서 좌초했다. 선원 29명이 비금도에 상륙했고, 이 소식은 중국 상하이에 주재하던 프랑스 영사 샤를 드 몽티니(Charles de Montigny)에게 전달됐다.

몽티니는 자국민 구조를 위해 같은 해 5월 2일 직접 비금도를 방문했다. 당시 나주 목사직을 겸임하던 남평현감 이정현은 프랑스 외교 사절단을 정중히 맞이했다. 그리고 조선의 전통주와 프랑스 샴페인을 함께 나누는 우호적인 만찬이 펼쳐졌다. 몽티니는 조선 정부의 인도주의적 대응에 감사를 표했으며, 기념으로 받은 조선 옹기 술병은 지금도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윤병태 시장(가운데)은 지난해 6월 프랑스 국제교류 방문 당시 1851년 한불 첫 만남의 상징인 ‘옹기주병’이 보관된 프랑스 파리의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을 방문했다. / 나주시
윤병태 시장(가운데)은 지난해 6월 프랑스 국제교류 방문 당시 1851년 한불 첫 만남의 상징인 ‘옹기주병’이 보관된 프랑스 파리의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을 방문했다. / 나주시

이 사건이 단순한 해난 사고가 아니라 양국 간 최초의 외교적 접촉이었다는 사실은 피에르 엠마누엘 후(Pierre-Emmanuel Roux) 파리시테대학교 교수의 연구를 통해 새롭게 조명됐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보다 35년, 1866년 병인양요보다 15년 앞선 만남이었다.

◆갈등이 아닌 포용으로 시작된 관계

이 역사가 특별한 이유는 그 성격에 있다. 조선과 서양 열강의 만남은 대부분 충돌과 갈등으로 기록됐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서양 세력과의 접촉이 곧 침략과 저항의 역사로 이어지던 시대였다.

그런데 1851년 나주에서의 만남은 달랐다. 조난당한 외국 선원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보호하고, 외교 사절을 정중히 맞이하며, 서로의 술을 나누는 평화로운 문화교류였다.

윤병태 나주시장이 "양국의 첫 만남이 갈등과 대립이 아닌 인도주의적 포용과 음식, 술이 함께한 평화로운 문화교류였다는 역사적 의미도 많은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옹기 술병이 1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은 그 만남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학자와 작가가 함께 만든 역사만화

'나르발호 표류기'는 이 사건을 처음 학문적으로 규명한 피에르 엠마누엘 후 교수가 직접 집필을 맡았다. 그림은 김연수 작가가 담당했으며, 소진형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역사 감수에 참여해 사실성과 완성도를 높였다. 역사적 정확성과 대중적 접근성을 동시에 갖춘 구성이다.

역사를 만화로 풀어내는 것은 단순한 형식의 선택이 아니다. 학술 논문이나 역사서로는 닿기 어려운 독자들, 특히 청소년과 일반 시민들이 이 역사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나주시가 한불 교류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만화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다.

도서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념관 조성으로 이어지는 역사 복원

나주시의 나르발호 사건 재조명 작업은 이번 만화 출간에 그치지 않는다. 나주시는 2023년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사 재조명을 위한 나주와 프랑스의 첫 만남 학술포럼'을 시작으로 '1851 한불 첫 만남 기념관(Maison de France)'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관이 완성되면 나주는 한불 교류사의 출발점으로서 역사적 위상을 갖게 된다. 1851년 당시 전라남도 일대를 관할하던 역사적 중심지였던 나주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이번 역사만화 출간이 1851년 당시 전라남도 일대를 관할했던 역사적 중심지 나주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70여 년 전 비금도 앞바다에서 시작된 조선과 프랑스의 첫 만남. 그 만남의 자리에 놓였던 조선 옹기 술병이 지금도 파리 근교 박물관에 남아 있듯, 그 역사의 의미도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