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노공업 공장은 왜 두 달간 멈춰야 했나…담장 밖에서는 세계가 반도체 전쟁 중

작성일

- 300여 명 23일 일터로…전면파업은 일단 멈추지만 노사협상은 계속
- 노조 “투쟁 포기·요구 철회 아니다…추가 피해 막기 위한 전술 변경”
- 서울서 제주까지 본사 주변 현수막 20 개…기자가 현장 확인
- 중국 언론도 노사분규 보도…한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 상대는 누구인가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리노공업 근로자 300여 명이 23일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전면파업은 일단 멈춘다. 그러나 이를 노조의 투쟁 종료나 노동조합 요구사항의 철회로 보기는 어렵다.

리노공업 본사 전경. / 사진 최학봉 기자 <저작권자(c) 위키트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리노공업 본사 전경. / 사진 최학봉 기자 <저작권자(c) 위키트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노조는 전날 조합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현장 복귀는 투쟁을 포기하거나 노동조합 요구사항을 철회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합원들의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한 전술 변경”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장 복귀 이후에도 노사 교섭과 대응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따라서 23일 현장 복귀는 장기간 이어진 전면파업의 일단락으로 볼 수 있지만, 노사 갈등 자체가 해소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노조가 향후 부분파업 가능성을 남겨두면서 생산 현장의 긴장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파업 자체만이 아니다.

기자가 주목한 것은 두 달 가까운 파업 기간 리노공업 공장 담장 밖에서 벌어진 일이다.

리노공업은 부산에서 성장한 반도체 기업이다. 반도체 검사에 사용되는 핀과 소켓 등을 생산하며 세계 시장에서 해외 기업들과 기술과 품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런 회사의 본사 주변은 파업 기간 노사갈등을 둘러싼 목소리가 쏟아지는 공간으로 변했다.

위키트리가 현장을 확인했을 당시 회사 주변에는 노조와 연대 노동단체 명의의 현수막 20개가 걸려 있었다.

부산 지역 단체뿐만이 아니었다.

서울과 제주 등 다른 지역 노동단체 이름이 적힌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일부 현수막에는 회사와 경영진을 강하게 비판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한쪽에서는 전국 각지 노동단체의 연대가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회사가 장기간의 생산 차질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 기간 회사 담장 밖, 더 넓은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세계 반도체 시장의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기술과 공급망을 둘러싸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들도 시장 점유율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리노공업에서 노사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해외 경쟁기업의 생산과 연구개발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장면은 중국 언론의 보도였다.

중국 언론에서도 리노공업의 노사분규를 다룬 기사가 등장했다.

물론 중국 언론이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는 사실만으로 중국 기업이 직접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이번 분규로 특정 경쟁기업이 어느 정도의 반사이익을 얻었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도 현재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부산의 한 반도체 부품기업에서 벌어진 노사분규가 해외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리노공업의 경쟁 상대는 부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더 나은 임금과 근로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다. 기업 역시 안정적인 생산과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노사 어느 한쪽만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생산현장도 돌아간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노조가 이겼느냐, 회사가 이겼느냐’의 문제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장기간의 생산 차질이 이어질 경우 세계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쟁력의 공백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 공백을 중국 기업이 가져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일본이나 대만 기업이라고 특정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는 리노공업과 경쟁하는 기업들이 존재하고, 경쟁은 기업 내부의 사정과 관계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23일, 300여 명의 근로자가 다시 리노공업 생산현장으로 들어간다.

공장은 다시 움직인다.

그러나 노사협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노조가 밝힌 것처럼 이번 현장 복귀가 투쟁의 포기나 요구사항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의 핵심은 현장 복귀 이후 노사가 어떤 방식으로 교섭을 이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부분파업 가능성도 남아 있는 만큼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두 달 가까운 전면파업이 남긴 과제는 노사 양측 모두에게 적지 않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경쟁력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로만 볼 수 없다.

결국 노사가 풀어야 할 문제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생산현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어떻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

리노공업 공장 담장 안에서는 노사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담장 밖에서는 세계 반도체 경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