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명 이끌고 정족산성 지킨 '양헌수' 양평 출신 장군, 호국인물로 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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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 전투에서 프랑스군 격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침략에 맞서 정족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양헌수 장군이 전쟁기념사업회가 선정하는 2026년 ‘10월의 호국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549명 이끌고 정족산성 지킨 '양헌수' 양평 출신 장군, 호국인물로 현양

양평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 무신의 호국 행적이 다시 조명되면서 병인양요와 정족산성 전투의 역사적 의미는 물론 지역이 배출한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고 선양하는 의미도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양평군(군수 전진선)은 지난 13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양헌수 장군을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렸다고 15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양헌수 장군 유족을 비롯해 전진선 양평군수, 지민희 양평군의회 의장, 양평군 보훈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해 장군의 호국정신과 업적을 되새겼다. 전쟁기념사업회는 매월 국가 수호에 기여한 역사적 인물을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해 그 공적을 기리고 있다.

양헌수 장군은 1816년 당시 경기도 지평현에서 태어나 1888년 세상을 떠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 일대가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양헌수가 1848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어영청 천총으로 정족산성 수성장의 임무를 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양헌수의 이름이 역사에 뚜렷하게 남은 계기는 병인양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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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프랑스군은 당시 조선에서 벌어진 천주교 박해를 문제 삼아 강화도를 침략했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하면서 조선 정부는 대응을 위해 군사를 파견했고, 양헌수는 화력에서 열세인 조선군이 정면 승부를 벌이기보다 지형적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해 정족산성을 중심으로 방어 작전을 펼쳤다.

양헌수는 경초군과 포수 등 549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갔다. 정족산성은 현재의 강화 삼랑성으로, 산지 지형을 활용할 수 있는 방어 거점이었다. 양헌수는 성 안에 병력을 나눠 배치하고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당시 조선군은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에 비해 화력이 크게 열세였지만, 산성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활용해 전투에 대비했다.

결전은 1866년 11월 9일 벌어졌다. 프랑스군 올리비에 대령이 160명의 병력을 이끌고 정족산성을 공격하자 양헌수가 지휘한 조선군은 성문 주변에 배치된 병력과 포수들을 활용해 맞섰다. 전투 결과 프랑스군은 전사자 6명을 포함해 60~7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됐으며, 조선군의 피해는 전사 1명과 부상 4명이었다. 정족산성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철수했고, 이 전투는 병인양요 과정에서 프랑스군의 원정을 종결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병인양요는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조선의 역사와 문화유산에도 큰 영향을 남긴 사건이었다. 프랑스군은 강화도 일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외규장각을 포함한 주요 시설과 문화유산을 훼손하고 의궤 등을 약탈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족산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거둔 승리는 당시 조선이 외세의 무력 침략에 맞서 대응한 대표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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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 장군의 공적은 전투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이후 공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그의 이름은 정족산성 승전비에도 남아 있다. 강화 삼랑성 내부에는 정족산성 전투 당시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으며, 양헌수가 이끈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친 현장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병인양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이번 ‘10월의 호국인물’ 선정은 양헌수 장군과 양평의 인연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양헌수 장군은 양평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현재 양평 곳곳에도 그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양평군의회 회의록에서도 용문면 광탄리를 양헌수 장군의 출생지로 소개하며 장군의 역사적 의미를 지역의 문화자원으로 재조명할 필요성이 언급된 바 있다.

현양 행사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현재로 이어가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제막식과 헌화·분향 등을 통해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참석자들이 장군의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순서로 진행됐다. 가족과 후손, 지방자치단체, 보훈단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역사적 인물의 삶을 기억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올해 양헌수 장군이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면서 양평군 역시 지역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한 사람의 역사적 행적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이 태어나고 성장한 지역의 역사와 당시 시대적 배경을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헌수 장군의 경우 병인양요와 정족산성 전투라는 국가적 사건과 양평이라는 지역의 역사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 교육과 역사문화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양평은 조선 후기 이후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세의 침략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 등에 참여한 인물들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양헌수 장군에 대한 이번 현양은 이러한 지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호국과 애국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서 나아가 생가와 묘역, 승전지 등 관련 유적을 연계해 지역의 역사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양평에서도 양헌수 장군의 출생지인 용문면 광탄리 일대와 묘소, 신도비 등 관련 유적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양평군은 앞으로 지역 출신 역사 인물을 발굴하고 관련 자료를 알리는 보훈 선양사업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549명 이끌고 정족산성 지킨 '양헌수' 양평 출신 장군, 호국인물로 현양

전진선 양평군수는 “우리 양평의 자랑스러운 인물인 양헌수 장군께서 전쟁기념사업회의 ‘10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것을 13만 군민과 함께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현양 행사를 통해 장군의 호국 충절을 깊이 되새기고, 그 고귀한 뜻을 군민 화합과 지역 발전을 이끄는 소중한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