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올해 관객은 벌써 1억 명을 넘겼는데… 영화관은 오히려 문을 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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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누적 관객 1억155만 명, 지난해보다 70일 넘게 빨라진 1억 돌파
반등 속에서도 멀티플렉스 3사 영화관은 반년 만에 9곳 감소

주말 저녁 영화 한 편을 예매하려다 결제 화면에서 손이 멈춘다. 일반관 성인 1장 가격은 1만5000원으로, 두 사람이 보면 3만 원이 든다. 같은 돈이면 OTT 한 달 구독료를 내고 집에서 여러 편을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텅 빈 영화관 자료 사진. / Fat.finch-shutterstock.com
텅 빈 영화관 자료 사진. / Fat.finch-shutterstock.com

하지만 올해 극장가 성적은 이런 망설임과 달랐다. 누적 관객 수가 예년보다 두 달 넘게 빠른 시점에 1억 명을 돌파했다.

1억 관객 넘긴 극장가, 같은 해 문 닫은 영화관도 늘어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13일까지 극장을 찾은 누적 관객은 1억155만여 명이다. 한글날 연휴 첫날인 10월 9일 하루에만 51만 명이 극장을 찾으면서 1억 명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12월 21일이 돼서야 1억 명을 채웠다. 올해는 이 시점이 70일 넘게 앞당겨졌다.

영화계는 연간 1억 명을 극장 산업이 유지되기 위한 최소선으로 본다. 상업영화 제작비를 감안하면, 한 해 관객이 이 정도는 돼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연간 관객은 1억609만 명으로 겨우 이 선을 넘겼다. 그러자 정부는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과 영화관 입장 할인권 같은 긴급 지원책을 내놨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배급사 쇼박스 제공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배급사 쇼박스 제공

올해 반등은 대형 흥행작이 이끌었다. 지난 2월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누적 1693만 명을 모아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지난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는 1219만 명을 동원했다. 중간 규모 흥행작도 고르게 나왔다. '군체'가 595만 명, '호프'가 458만 명, '살목지'가 324만 명을 기록했다.

극장을 찾는 연령대도 달라졌다. '살목지'는 20대 관객 비중이 34%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고, '군체'도 20대 비중이 31%로 1위였다. 반면, 상반기 흥행에 실패한 '휴민트'는 40대 관객 비중이 27%로 가장 컸다.

그러나 관객 숫자만 보고 극장가가 살아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의 영화관은 지난 6월 말 기준 419곳으로 지난해 말 428곳 대비 9곳 줄었다. 하반기에도 폐점은 이어졌다. CGV 판교와 롯데시네마 합정이 8월에 영업을 끝냈고, 9월에는 메가박스 신촌과 동대문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2008년 문을 연 메가박스 동대문은 지난달 30일 마지막 상영으로 18년 운영을 마쳤다. 롯데시네마 부평도 8월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CGV 자료 사진. / Ari_Achmad Rizal-shutterstock.com
CGV 자료 사진. / Ari_Achmad Rizal-shutterstock.com

극장 업계는 비용 부담을 이유로 든다. 한 극장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에 "코로나19 이전보다 관객은 줄었지만, 인건비와 임대료 등은 올라 재무 상태를 개선하려면 극장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을 닫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롯데시네마는 지난달 인천 검단신도시에 6개관 709석 규모의 검단아라를 새로 열었다. 이곳에는 음향 특화관과 리클라이너 좌석을 배치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오래된 지점은 정리하고, 새로 개발된 상권에는 극장을 내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연간 관객 2억 명을 넘던 2013~2019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표값 1만5000원을 두고 엇갈리는 관객과 극장

현재 멀티플렉스 일반관의 성인 2D 관람료는 평일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 선이다. 멀티플렉스 3사는 2019년 주말 기준 최대 1만2000원이던 표값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차례에 걸쳐 1만5000원까지 올렸다. 코로나19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은 극장 사업자들이 팬데믹 이후 가격을 올린 결과다.

관객이 느끼는 부담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영진위가 지난 3월 내놓은 '영화 콘텐츠 소비 트렌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극장 관람 횟수가 줄었다는 응답이 45.8%였다. 늘었다는 응답은 12.1%에 그쳤다. 관람을 줄인 이유로는 극장 관람비 부담이 25.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21.5%, OTT에 볼만한 영화와 시리즈가 많아서 17.5%, 개봉 뒤 OTT나 VOD로 볼 수 있어서 17.4% 순이었다.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이 영화 '암살자(들)'을 예매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이 영화 '암살자(들)'을 예매하고 있는 모습. / 뉴스1

관객이 생각하는 적정 가격은 지금 표값보다 한참 낮다. 적정 티켓 가격으로 8000원 이상 1만 원 미만을 고른 응답이 41.0%로 가장 많았다. 이 조사는 지난해 10월 전국 만 14~69세 가운데 최근 1년 동안 극장이나 OTT로 영화를 1편 이상 본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그렇다고 극장이 표값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표 1장 값이 여러 곳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1만5000원짜리 표에서는 먼저 영화발전기금 3%인 450원과 부가가치세 1324원을 뗀다. 남은 금액은 극장과 배급사가 보통 5대5로 나눈다. 계산하면 극장에 돌아가는 몫은 6600원 남짓이다.

가격이 내려가면 관객이 움직인다는 점은 지난해 여름에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는 지난해 7월 총 450만 장, 271억 원 규모의 영화관 6000원 할인권을 배포했다. 배포가 시작되자 대기 인원이 50만8504명까지 늘었고, 주요 극장의 누리집과 앱 접속이 마비됐다. 할인권 배포 뒤 첫 주말인 7월 25~27일 관객은 173만1167명으로 직전 주말 대비 14.8% 늘었다.

관객이 싼 표만 찾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화를 더 비싼 값에 보려는 수요도 함께 커졌다.

특별관과 팬덤 상영으로 '관객 한 명당 매출' 높이는 극장들

'오디세이'의 기록이 이를 보여준다. 지난 12일 기준 '오디세이'의 누적 매출액은 1388억4131만 원이다. 2022년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의 1379억 원을 넘어 국내 개봉 외화 가운데 역대 매출 1위에 올랐다. 그런데 누적 관객 수는 1218만8631명으로 역대 외화 5위다.

관객 수보다 매출 순위가 높은 이유는 1인당 매출에 있다. '오디세이'의 관객 1명당 평균 티켓 매출은 약 1만1391원이다. 역대 외화 관객 1위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약 8787원보다 30%가량 높다. 일반 관람료가 오른 몫도 있지만, 아이맥스 관객이 매출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 영화는 장편영화 최초로 전 분량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CJ CGV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국내 아이맥스 누적 관객은 173만 명으로 전체의 14.2%였다. 아이맥스 누적 매출은 313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22.6%를 차지했다. 일부 상영관에서는 암표 문제까지 불거졌다.

특별관 매출 전체도 늘었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맥스·돌비·4D 등 특별관 매출은 약 1098억 원으로 전년 728억 원 대비 370억 원 증가했다. 관객 수가 줄던 해에 거둔 성과다.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아이맥스 상영관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아이맥스 상영관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극장 3사는 저마다 특별관을 내세운다. CJ CGV는 아이맥스와 4DX, 롯데시네마는 광음시네마, 메가박스는 돌비 시네마를 앞세워 집에서 OTT로 보는 것과는 다른 관람 경험을 강조한다. 한 극장 관계자는 한경닷컴에 "지금의 관람 수요로는 예전처럼 대규모 상영관을 유지하기 어려워 객단가가 높은 특수상영관 같은 프리미엄 공간으로 극장을 재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극장 스크린에 영화만 걸리는 것도 아니다. 콘서트 실황이나 스포츠 중계처럼 팬덤이 모이는 상영이 늘고 있다. 롯데컬처웍스는 오는 24일부터 31일까지 '하이브 씨네 페스트 2026'을 롯데시네마에서 국내 극장 단독으로 연다. 세븐틴의 인천 공연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의 서울 공연을 담은 콘서트 실황 영화 3편이 처음 공개된다. 모든 상영작은 관객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싱어롱 방식으로 진행한다. 극장 공간을 활용한 팬덤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했다.

CGV도 영화 밖의 상영을 넓히고 있다. '아이유 콘서트: 더 위닝'은 콘서트 실황 영화로는 처음으로 2D부터 스크린X·4DX·울트라 4DX·아이맥스까지 모든 포맷으로 개봉했다. ‘2025 KBO 플레이오프'를 스크린X로 생중계한 상영은 평균 객석률이 80%를 넘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상영과 '코렐라인', '더 폴' 재개봉도 관객을 모았다. 지난 7월에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 올스타전을 CGV 24곳에서 스크린X 라이브로 상영했다.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 뉴스1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 뉴스1

한 극장 업계 관계자는 MTN에 "영화가 아닌 콘텐츠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팬덤 기반 콘텐츠는 상영 회차가 적어도 관객 반응이 좋고, e스포츠나 공연 실황은 객석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굿즈와 특전을 함께 내걸면서 팬덤을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특별관을 늘리는 일에도 부담이 따른다. 특별관은 시설 투자와 유지비가 크고, 객석을 채울 대형 작품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 특별관에 맞는 작품이 계속 개봉하지 않아 가동률이 떨어지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극장이 떠안는다. 프리미엄 관람 수요가 일부 블록버스터에 몰리면, 일반관과 중소 규모 영화가 밀려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연말 극장가에는 대작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 누적 300만 명을 넘기며 관객을 모으고 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듄: 파트3'가 연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계는 올해 관객 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