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혐의없음'으로 처리한 사건인데... 결말이 좀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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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의 문제 제기' '검찰 직접 수사' '법원의 공소제기 명령'이 이끌어낸 유죄
환경미화원이 신발장에 깔려 숨진 사고 직후 핵심 증거인 신발장을 없앤 공무원과 미화원들이 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경찰이 증거인멸 의도가 없었다며 혐의없음으로 결론 낸 사건이다. 유족의 끈질긴 문제 제기와 검찰 직접 수사, 법원의 공소제기 명령이 없었다면 묻힐 뻔했다.

SBS가 24일 단독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6단독 장재용 부장판사는 전날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된 전직 수원시 공무원 한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한씨 지시로 신발장을 해체한 동료 미화원 3명에게는 증거인멸 혐의로 각각 벌금 2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사고는 2018년 9월 18일 오전 10시12분쯤 수원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어났다. 계단참에 놓여 있던 높이 2m15㎝, 폭 1m 크기의 신발장이 쓰러지면서 환경미화원 A씨를 덮쳤다. A씨는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쳤다. A씨는 치료를 받다 약 한 달 뒤 숨졌다.
문제의 신발장은 사고 30여 분 만에 현장에서 사라졌다. 당시 미화원 관리 업무를 맡았던 한씨는 사고 직후 현장에 도착해 쓰러진 A씨를 발견했다. 한씨는 신발장 설치·관리 소홀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해 미화원들에게 신발장을 치우라고 지시했다. 미화원들은 신발장을 창고로 옮겨 해체했다. 이 장면은 행정복지센터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한씨는 사고 이듬해 퇴직했다.
유족이 수원시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2021년 수원시의 신발장 관리 소홀 책임을 인정했다. 수원시에 7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유족은 이후 CCTV 영상을 근거로 한씨 등을 증거인멸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의 판단은 달랐다. 유족은 수사 과정에서 거듭 진상 규명을 호소했음에도 경찰은 고발 1년3개월 만에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근거는 한씨의 해명이었다. 경찰은 "교통사고가 나면 잔해를 치우지 않느냐"는 한씨 주장을 받아들여 증거인멸 고의가 없다고 봤다. 신발장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고 직후 이를 해체한 정황도 영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피의자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사람이 숨진 사고의 핵심 물증이 왜 30여 분 만에 사라졌는지보다 피의자의 해명에 무게를 둔 것이다.
검찰은 유족이 낸 영상 속 의심스러운 정황을 들어 경찰에 두 차례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경찰은 결론을 바꾸지 않았다. 검찰은 직접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9월 한씨와 미화원 차모씨를 재판에 넘겼다. 신발장 해체에 가담한 나머지 미화원 2명은 불기소 처분했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재정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검찰에 공소제기를 명령하면서 4명 모두 법정에 서게 됐다. 이 과정은 지난 1월 SBS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재판에서 한씨 등은 안전상 이유로 신발장을 옮겼을 뿐 증거를 없앨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받아들였던 논리와 같은 취지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발장 설치 관리상 하자가 A씨 피해와 연결됐다는 점을 누가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형사·징계 책임 가능성도 쉽게 예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미필적으로라도 신발장의 증거 가치를 훼손한다는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안전상 이유로 신발장을 옮길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해체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고 봤다. 민사소송에서 신발장 설치 결함 등이 사망 원인으로 인정된 점도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증거인멸죄가 형사사법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유족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진상을 확인할 수 없게 되는 등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여 엄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들이 전과가 없고 한씨가 사죄 의사를 밝힌 점, 미화원들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씨 지시에 따라 범행한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유족은 유죄가 인정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지금까지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경찰이 혐의없음의 근거로 삼은 '교통사고 잔해' 논리는 법정에서 통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현장을 정리하는 것과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는 물건을 서둘러 해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경찰은 신발장이 사라지는 과정이 담긴 CCTV 영상이 있었는데도 피의자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검찰이 두 차례 보완수사를 요구했을 때도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경찰이 무혐의로 덮은 혐의는 검찰 직접 수사와 법원의 공소제기 명령을 거쳐서야 유죄로 인정됐다. 사고가 난 지 8년, 유족이 고발한 지 수년 만이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경찰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문제는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작성한 '보완수사 요구 검찰 미송부 내역'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에 경찰이 장기간 회신하지 않은 사건은 1111건에 이른다. 국수본이 이 가운데 사건번호가 확인된 526건을 1차 점검한 결과 53건은 검찰에 결과조차 통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중 9건은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 시효가 지난 9건은 모두 검찰이 2021년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이다. 경찰은 미통보 사건 상당수에서 전산 입력 누락 등 관리 소홀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 보고서는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공개됐다.
수원시는 그동안 수사와 재판 상황을 지켜본 뒤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수원시는 판결 내용을 검토한 뒤 현재 재직 중인 미화원 3명에 대한 후속 조치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