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사망설 급속하게 퍼질 당시에 중국에 ‘비상경계’ 내려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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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설 퍼지던 와중에 김정은 맞을 채비에 분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망설이 해외에서 퍼지던 와중에 중국은 이미 며칠 전부터 김 위원장을 맞을 채비에 분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찾자 도심 주요 지역은 사실상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 23일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제3차 중대장 대회를 주재하고 ‘새 시대 강군건설과 중대장들의 임무’에 대해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 23일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제3차 중대장 대회를 주재하고 ‘새 시대 강군건설과 중대장들의 임무’에 대해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25일 정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단둥을 하루 일정으로 다녀왔다. 지난해 9월 베이징 방문 이후 1년 1개월 만의 방중이다. 단둥에서는 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김 위원장을 맞았다.

단둥의 경계 강화 움직임은 김 위원장이 도착하기 사흘 전부터 감지됐다. 현지에서는 공안 인력이 증원 배치됐다는 전언이 잇따랐다. 22일에는 경호 예행연습이 진행됐다. 23일에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되고 장갑차로 보이는 무장 차량까지 등장했다. 압록강변과 신압록강대교 일대에는 장갑차와 경찰 특수부대가 배치됐다.

김 위원장이 처음 찾은 항미원조기념관은 이미 닷새 전부터 문을 닫은 상태였다. 기념관은 '전력 설비 수리와 난방 시스템 개조'를 이유로 19일부터 전날까지 임시 휴관했다.

같은 시기 해외에서는 김 위원장의 신변을 둘러싼 억측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 중국 반체제 인사가 유포한 사망설은 국내외 매체를 거치며 빠르게 퍼졌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그 사이 김 위원장의 방문을 전제로 한 경호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작 중국은 방문 당일까지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로이터통신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신화통신은 전날 저녁에야 회담과 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북한 관영매체도 전날 저녁까지 방중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단둥의 이상 기류는 외신의 레이더에도 걸렸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의 한 기자는 23일 오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단둥의 보안이 지난 24시간 동안 강화됐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다음 날 단둥을 찾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고 했다. 중국의 항미원조 기념일과 관련된 방문일 수 있다는 관측도 덧붙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 23일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제3차 중대장 대회를 주재하고 ‘새 시대 강군건설과 중대장들의 임무’에 대해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 23일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제3차 중대장 대회를 주재하고 ‘새 시대 강군건설과 중대장들의 임무’에 대해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방문 당일 단둥의 통제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일본 교도통신은 전날 오전 단둥에서 엄격한 교통 통제가 실시됐다고 보도했다.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북한 고위 인사의 방문과 관련된 조치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항미원조기념관 주변에서 이른 아침부터 교통 통제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단둥 당국은 공안을 동원해 도시 곳곳의 주요 도로를 막았다. 차량을 수십 분씩 세워 두고 좁은 골목길 통행까지 제한했다. 주말인데도 평소 북적이던 번화가에서 차량과 행인이 자취를 감췄다. 일부 호텔은 예약을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압록강대교 앞 한 호텔은 외국인 투숙이 금지됐다며 이미 받은 예약을 갑자기 취소하기도 했다. 이달 15일 신압록강대교 개통식 때도 주변 고층 건물 관리와 호텔 투숙 제한이 있었다. 이번 통제는 그보다 한층 엄격했다.

북한 신의주와 이어지는 중조우의교(압록강철교)와 신압록강대교 주변에는 북한 인공기와 중국 오성홍기가 줄지어 걸렸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김 위원장 일행으로 보이는 차량 행렬이 신압록강대교를 건너는 영상이 퍼졌다. 교통 통제로 도로에 갇힌 차량 행렬을 담은 영상도 잇따라 올라왔다.

중국은 영접 인사의 격도 높였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주석은 전날 오전 단둥 항미원조기념관 광장에서 김 위원장을 맞았다. 왕이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류하이싱 당 대외연락부장,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도 단둥으로 내려왔다. 중국 외교 라인의 핵심 인사들이 베이징을 떠나 접경 도시에 총출동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조용원 노동당 비서와 최선희 외무상, 김여정 당 총무부장 등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왕 주석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사와 축원을 김 위원장에게 전했다. 시 주석은 26~2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20기 5중전회)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이 막판까지 영접 인사를 놓고 고심한 정황도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초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단둥을 찾는 것으로 계획됐다가 바뀌었다는 국가정보원의 추가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중국 권력 서열 2위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때 김 위원장이 리 총리를 만났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국정원은 23일 정보위에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보고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도 같은 자리에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첫 일정은 항미원조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은 북한 신의주와 단둥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압록강변 잉화산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기리는 '국가 1급' 박물관이다. 중국은 1958년 북한에서 돌아온 중국군에게서 무기와 생활용품, 훈장, 깃발 등을 모아 참전 기념시설을 꾸렸다. 이 시설은 정전협정 40주년인 1993년 국가 기념관으로 격상됐다. 지금은 부지만 18만2475㎡에 이르는 대형 기념관이 됐다. 전차와 기관총 등 6·25전쟁 관련 유물 1만2000여점과 역사 유물 7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이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왕 주석과 함께 항미원조기념탑에 헌화했다. 붉은 화환에는 '중국인민지원군 렬사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라는 문구와 김 위원장의 직함·이름이 한글로 적혔다. 검은 양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화환 문구를 손으로 정리한 뒤 맨 앞에서 묵념했다. 김 위원장은 기념관에서 중국군의 참전 영상과 유물을 관람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등의 사진과 친필 메시지를 담은 기념패도 선물했다.

김 위원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목숨과 피로 조선을 도운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을 추모하고 항미원조 영웅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영원한 경의를 표하려고 특별히 단둥을 찾았다"고 말했다.

단둥은 6·25전쟁 당시 중국군이 처음 압록강을 건넌 곳이자 주요 병참기지였다. 지금은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오가는 최대 교역 거점이다. 중국은 중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로 정해 기리고 있다. 올해는 76주년이다.

김 위원장은 왕 주석과 회담에서 "양국 협력의 전망은 매우 넓다"며 "역사적 우의를 이어가고 실무 협력을 넓혀 두 나라 인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왕 주석은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인적 왕래와 경제·무역 협력을 넓혀 양국 인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오후 왕 주석과 함께 단둥의 자동차 공장을 찾아 버스 조립 등 생산 현장을 살폈다. 두 사람은 신압록강대교 위를 함께 걷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다시 신압록강대교에 오른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왕 주석은 대교까지 나와 김 위원장을 배웅했다.

신압록강대교는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길이 3026m, 왕복 4차로 다리다. 중국이 건설비 전액을 대 2014년 완공했다. 북한 측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12년 동안 개통이 미뤄지다 지난 15일 문을 열었다. 통일부는 김 위원장이 전날 오전 이 다리를 통해 중국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했다. 다리에 철로가 없어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전용열차로 이동한 뒤 전용차로 다리를 건넌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떠난 뒤 단둥 시내의 교통 통제는 풀렸다. 도로변에 걸렸던 인공기도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