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불암 별세… 건강 이상설 재조명, 가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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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아버지' 최불암, 29일 서울 강서구 병원서 별세
향년 87세… 67년 연기 인생 마무리
배우 최불암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87세.

팬들의 안타까움이 이어지면서 올해 초부터 이어졌던 건강 이상설과 투병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전날 오후 10시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졌고, 2011년부터 14년간 이끌어 온 KBS 1TV 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다. 이후 재활 치료에 힘써 왔지만, 병세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곧 퇴원하실 것"이라던 가족… 올해 내내 이어진 투병 소식
최불암의 건강 상태를 둘러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지난 3월이다. 그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한 뒤 1년 가까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배 배우 박은수와 백일섭이 방송에서 잇따라 최불암의 상태를 걱정하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최불암 건강 이상설이 빠르게 퍼졌다.
당시 가족은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최불암의 아들 최모 씨는 지난 3월 1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버지는 지금 입원한 채로 재활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고 계신다"며 "머지않아 퇴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하차 배경도 함께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인의 밥상'을 그만두신 이유 가운데 허리 문제도 일부 있었다"며 "걷는 일이 힘들어지셔서 수술을 받으셨고 이후 재활 치료를 이어 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불암이 MBC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러나 두 달 뒤 전해진 소식은 달랐다. 지난 5월 머니투데이는 케이스타뉴스를 인용해, 최불암이 척추협착증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척추협착증은 신경이 지나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지는 퇴행성 질환이다. 허리에서 시작된 통증이 다리까지 뻗치고 감각과 근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최불암은 자신의 연기 인생을 다룬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 인터뷰도 취소했다.
최불암 측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에 "사모님과 가족들이 선생님의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 방송에 나가는 것을 크게 걱정하셨다"며 "재활 일정이 계속 이어져 촬영 날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으로서는 출연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연세가 있으셔서 재활이 오래 걸릴 것 같고 당분간 방송 촬영은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주인공 없이 전파를 탔다. 2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지난 5월 5일 최불암의 어린 시절을 담은 1부를 먼저 내보냈다. MBC 측은 "최근까지 최불암 측과 촬영 일정을 맞춰 왔지만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싶다는 가족의 뜻을 존중해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록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시청자에게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는 프로그램 곳곳에 담겼다"고 설명했다.

병상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공개된 것은 지난 6월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달 입원 중인 최불암을 찾아가 문안 인사를 했다고 직접 알렸다. 최 장관은 "편찮으셔서 입원해 계신 우리의 '국민 아버지' 최불암 선생님을 찾아뵈었다"며 “'파하' 하는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셔서 많이 안심이 됐다”고 적었다.
최 장관에 따르면, 최불암은 세상 이야기부터 예술과 종교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장관을 격려했다. 당시 공개된 사진 속 최불암은 한 대학병원 병실에 누워 있었고, 예전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수사반장'·’전원일기'로 안방 사로잡아
최불암은 1939년 인천 제물포구(당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40년생으로 올라 있다. 그는 서울 중앙고와 서라벌예대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원래 꿈은 연출가였다. 하지만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무대에 오르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1965년 국립극단 단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에 나섰다.
안방극장에 처음 얼굴을 알린 것은 1967년이다. 그는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혔고, 20대의 나이에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했다. 이후에도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서른 살에는 MBC 개국 드라마 '역풍'(1969)에서 노인 역을 맡았다. 40대에는 '제1공화국'(1981∼1982)과 '제2공화국'(1989∼1990)에서 80대의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그를 국민 배우로 만든 작품은 MBC '수사반장'이다. 이 드라마는 1971년부터 1984년까지, 그리고 1985년부터 1989년까지 18년간 방송됐다.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최불암은 박영한 반장으로 시청자를 만났다.
또한 국내 최장수 드라마인 MBC '전원일기'(1980∼2002)에서는 22년간 양촌리 김 회장으로 살았다. MBC '그대 그리고 나'(1997∼1998)의 캡틴 박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도 '여명의 눈동자'와 '미망' '영웅시대' '궁' '식객' 등 인기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다.

배우 인생의 단짝은 김혜자였다. 두 사람은 '개구리 남편'(1969∼1970)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고, '궁'(2006)까지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특히 '전원일기'에서는 22년 동안 부부로 나왔다. 그래서 두 사람을 실제 부부로 아는 시청자도 많았다.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빛과 그림자'(1967)를 시작으로 '만종' '영자의 전성시대' '왕십리' '바람불어 좋은날' '기쁜 우리 젊은 날' '잠복근무'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섰다. 같은 해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도 얼굴을 비쳤다. 2024년에는 '수사반장'의 프리퀄인 MBC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해 '영원한 수사반장'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진행자로도 오래 활동했다. 그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고발 프로그램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맡았다. 이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고개를 젖히고 '파하~' 하고 웃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정계 진출부터 명예 국가수사본부장까지… 연기 밖의 발자취
최불암은 잠시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92년 통일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제14대 국회에 들어갔지만,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에 나섰다가 낙선했다. 이후 1996년 '전원일기'로 연기에 복귀했다.
최불암 부인 김민자와의 인연도 잘 알려져 있다. 최불암은 KBS 드라마 '정동마님'에 출연하던 김민자에게 첫눈에 반했고, 이를 계기로 KBS로 옮겨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연극 '환절기'(1968) 등에 함께 출연하며 가까워졌고, 4년간 교제한 끝에 1970년 결혼했다. 슬하에는 1남 1녀를 뒀다.
생전에 받은 상도 많다. 그는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74·1978)과 연극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1969·1971)을 받았다. 대종상영화제에서는 남우조연상(1978)과 남우주연상(1979)을 차례로 받았다. 또한 국민훈장 목련장(1998)과 은관문화훈장(2014)도 수상했다.
경찰과의 인연도 깊었다. 최불암은 '수사반장'으로 경찰의 이미지를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처음 명예 경찰이 됐다. 이어 2024년에는 민간인 가운데 처음으로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에 위촉됐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는 미아 찾기 방송과 희소병·난치병 어린이 돕기 특별 생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또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과 사단법인 제로캠프 이사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