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 거 아니냐" "식량·식수 비축해뒀다"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주요 뉴스에 위키트리 기사가 더 자주 표시됩니다.
북한 움직임, 해외 재난 대비령이 전쟁 불안감 촉발
초코 다이제 30개, 멀티비타민 2통, 2ℓ 생수 20병, 스팸, 포도당. 한 직장인이 "다들 라디오, 수동발전기, 식량, 식수 7일치를 쟁여 놔라"며 공개한 비상물자 목록이다. 비상용품을 챙기다 남편과 다퉜다는 글, 전쟁이 나면 차가 막혀 빠져나갈 수 없다며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는 글도 올라왔다.
1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전쟁 나는 거 아니냐"며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최근 블라인드에 쏟아지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산다는 한 이용자는 "스레드에서는 전쟁 난단 이유로 가방 싼다고 난리던데 일산 사는데 무섭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김포에서 카메라로도 보일 정도로 가까이 내려왔다는데 큰일 난 거 아니냐"고 물었다.

궁금증도 쏟아졌다. 전쟁이 나면 어디가 가장 안전한지, 40~50대 예비역까지 징집되는지, 반려동물을 데리고 피난할 수 있는지 묻는 글이 꼬리를 물었다. "전역한 지 10년이 넘어서 요즘 국방력을 잘 모르겠다"며 전쟁이 나면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 이용자도 있었다.
한 이용자는 "북한의 움직임이 어딘가 이전과 다른 것 같다"며 "왜 정부는 대응 방안 발표가 없느냐. 아무 말 없으니 더 무섭다"고 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북한, 핵 이런 영상들이 마구 뜬다"며 "자다가 미사일 날아올까 봐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북한 해안에 모습을 드러낸 자주포다. 경기 김포시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망대에서 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 개풍군 해안가에 122㎜ 자주포로 추정되는 장비가 포신을 남쪽으로 향한 채 서 있는 모습이 국내외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다. 위장막도 씌우지 않아 망원렌즈로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장비 앞면에는 "조선 인민의 철천지원수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병사들이 포신을 움직이는 장면까지 담긴 영상과 사진은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북한의 대남 위협 수위도 높아졌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지난달 19~22일 잇달아 담화를 내고 서부·중부전선에 '전술적 타격 수단' 등을 배치하겠다고 했다. 비무장지대(DMZ)에서는 지난 9월 지뢰 폭발 사고도 있었다. 유엔군사령부와 공동으로 현장을 조사한 결과 군사분계선 남측에서 북한제 대인지뢰가 확인됐다. 북한은 이를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군은 지난달 23일 군사분계선 확인과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남북 군사회담을 북한에 제안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갑작스러운 방중도 불안을 키웠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왕후닝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김 위원장을 맞았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 기념일을 앞두고 항미원조기념탑에 헌화하는 일정이었다. 블라인드에는 "왜 갑자기 방독면을 준비하고 식량을 비축하라고 하지? 왜 김정은이 갑자기 중국을 방문하지?"라는 글이 올라왔다.

해외 소식도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내각부는 지난달 22일 국민에게 최소 72시간을 버틸 식량과 물을 마련하라고 권고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호소노 고시 방재담당상이 최소 3일분, 가능하면 1주일분의 식량과 물을 집에 갖춰 달라고 당부했다. 일본 정부는 2일 이런 내용을 담은 긴급 요청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 이용자는 "세계 각국이 전쟁에 대비하라고 하는 게 뭔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각국 권고는 전쟁보다 재난 대비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일본이 대비 대상으로 꼽은 재난은 난카이 해곡 대지진, 수도권 직하 지진, 후지산 분화 등이다. 영국 정부도 폭풍·홍수 같은 악천후와 기반시설 마비, 사이버 공격을 대비 대상으로 들었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재난 대비 안내서를 내고 식수와 비상식량, 손전등, 라디오, 상비약 등을 담은 72시간용 비상 가방을 준비하라고 안내했다. 블라인드에도 "전쟁 준비인가, 사이버 해킹으로 인한 물류 대란 의심인가"라며 권고의 배경을 궁금해하는 글이 올라왔다.
북한의 남침을 그린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가 지난달 23일 출시된 것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다. 게임 도입부에 이태원 참사 당시 실제 방송 화면이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안에서 차단 이야기까지 나왔다. 블라인드에는 "이젠 하다 하다 게임까지 차단한다고?"라는 반발 섞인 글이 올라왔다. 배급사 액티비전은 오는 12일 업데이트 때 해당 영상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자주포 노출을 보여 주기식 무력시위로 판단하고 있다. 장도영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지난달 27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기존의 구형 포를 노출하고 있다"며 "담화에서 언급된 새로운 무기체계 종류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여러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남 확성기에 대해서는 "담화 이전에도 일상적으로 확성기를 정비하는 모습이 식별됐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불안을 경계하는 글도 적지 않다. 한 이용자는 "진짜 전쟁 일으킬 심산이면 이럴 수가 없다"며 "미북회담 준비를 위한 몸값 높이기 작업일 뿐 진짜 전쟁 준비는 은밀하게 한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전쟁 난다고 자꾸 헛소리하는 애들 뭐냐"며 "광화문에 미국 대사관 직원들 아주 멀쩡하게 잘 있다"고 했다. "전쟁 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다들 호들갑 떠는 거 보고 다시 몇 년은 평화롭겠구나 싶다"는 반응도 나왔다. "전쟁 나도 출근은 해야지", "난 전쟁보다 내일 출근이 더 걱정된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