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우리 진짜 전쟁나는 거냐” “배낭 싸고 있다”…국내 SNS 상황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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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전쟁 공포가 현실 사재기로, 알고리즘이 만드는 불안의 악순환
최근 스레드 등 주요 SNS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전쟁 공포'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비상식량과 생필품을 사재기하거나 생존 배낭을 꾸리는 이용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불안이 오프라인의 비축 행렬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휴대용 라디오 주문 내역부터 생수 더미까지
한 이용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휴대용 라디오 내역을 인증하며 "이 시간에 라디오를 샀다, 너무 무섭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이용자는 원룸 한쪽 벽면에 생수 2리터들이 묶음을 가득 쌓아둔 사진과 함께 "물을 얼마나 더 쟁여놔야 하느냐"며 불안을 토로했다.
구체적인 비축 목록을 공개하는 게시물도 잇따랐다. 한 작성자는 "혹시 몰라 대비를 완료했다"며 생수 60병, 햇반 40개, 참치캔 30개, 런천미트 18개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대용량 보조배터리와 부탄가스, 자가발전 라디오 손전등도 목록에 포함했다. 다른 이용자는 방한용 은박 담요와 구급약품, 야전삽, 손전등을 채운 '생존 배낭' 사진을 올리며 "오버하는 건가 싶지만 혹시 몰라 들고나갈 수 있게 싸뒀다"고 전했다.
목록을 보면 식량과 식수, 전원 확보, 통신 수단, 대피용 장비로 구성이 나뉜다. 물과 즉석밥, 통조림은 며칠을 버티기 위한 물량이다. 보조배터리와 자가발전 라디오는 정전과 통신 두절을 가정한 준비물이다. 은박 담요와 야전삽은 집을 떠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둔 장비다. 불안이 막연한 걱정에서 구체적인 행동 계획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확인 좀 해달라"…수백 개씩 달리는 문의 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진위를 확인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다들 전쟁 대비한다는데 나만 안 하고 있는 거냐", "우리 집은 비상식량 30만 원어치를 주문했는데 정말 무슨 일이 터진 거냐", "사실 확인 좀 해달라"는 문의 글과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질문이 다시 불안을 키우고, 인증 게시물이 질문을 낳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불안의 직접적인 계기로는 북한 관련 소식이 꼽힌다. 최근 김정은 사망설이 돌았고, 북한의 도발이 연이어 발생하자 SNS에 전쟁 대비 인증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청와대 “20년 전부터 압도적 대비 태세”
청와대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우리 군이 이미 20년 전부터 압도적인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전력 격차 역시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위협에 우리 능력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비 태세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SNS의 불안'과 '정부의 설명' 사이에는 온도 차가 존재한다.
서부전선에서 확인된 북한의 움직임
군사적 긴장 지표도 실제로 올라가 있다. 북한은 서부전선 접경지역에 포병 화력을 노출하고 남부 국경 요새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전술 무기 증강을 경고하고 현장을 시찰한 직후, 경기 김포 애기봉 맞은편인 황해도 개풍군 해안 철책선 인근에 122㎜급 자주포 3문이 남측을 향해 이례적으로 전진 배치됐다.
군 당국은 북한이 기존 구형 화포를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추가 배치와 사격 훈련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가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대화 채널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포병 전력이 노출됐다는 점이 시민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단둥 방문과 주한미군 변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해외발 사망설을 불식하듯 평양 군 행사에 참석했다. 이어 중국 단둥을 하루 일정으로 전격 방문해 서열 4위 왕후닝을 만나며 건재를 과시했다. 사망설 자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지만, 지도자의 공개 행보가 곧바로 긴장 완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군사 동향과 외교 행보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한반도 정세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동맹 차원의 변수도 등장했다. 조지프 힐버트 미8군 사령관이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역내 분쟁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안보 지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440만 건 해킹 시도와 AI 가짜 이미지
위협은 물리적 대치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금융망을 겨냥한 북한 IP의 침투 탐색 시도가 440만 건 넘게 포착됐다. 일부 금융사와 가상자산거래소에서는 고객 정보 유출 등 해킹 피해가 확인됐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미 피해가 현실로 나타난 상태다.
온라인 여론 공간에서는 가짜 정보도 퍼졌다. SNS에는 접경지 카페 창밖으로 북한 자주포가 보인다는 AI 합성 가짜 이미지가 유포됐다. 실제 자주포 전진 배치 소식과 맞물리면서 합성 이미지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여지가 커졌다. 전쟁 공포 게시물을 접했을 때 이미지의 출처와 원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영국이 먼저 꺼내 든 ‘72시간 비상 물자'
국내 일부 시민이 불안을 키운 배경에는 해외 사례도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2일 재난 대비 캠페인을 시작하고 최소 72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비상 물자를 확보하라고 권고했다. 식량과 식수 외에 손전등, 보조배터리, 휴대용 라디오, 현금 등을 준비 물품으로 제시했다. 국내 SNS에서 인증되는 물품이 영국 정부의 권고 목록과 상당 부분 겹친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에서도 비상 상황에 대비해 최소 사흘분의 생필품을 비축하도록 권고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권고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나오면서 '다른 나라도 준비하는데 우리만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퍼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들 국가의 권고는 재난 대비 성격이어서, 특정 국가와의 전쟁 임박을 의미하는 조치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중동 전쟁 장기화도 불안 요인
중동 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을 공습한 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주변국으로 여파가 번졌다. 인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일부 직장이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학교들은 원격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쟁이 한 국가 안에서 끝나지 않고 일상 영역까지 파고드는 사례를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반도 상황과 중동 소식이 SNS 피드에 함께 올라오면서 불안이 증폭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알고리즘 타고 번지는 불안, 더 큰 사재기로 이어질까
일각에서는 SNS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된 막연한 불안이 시민들을 자극해 불필요한 사재기와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증 게시물이 많이 노출될수록 '나만 준비 안 한 것 아니냐'는 심리가 강해지고, 구매 인증이 다시 새 게시물로 올라오는 순환이 반복된다. 실제 소비 행동으로 이어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도 특징이다. 비상식량 30만 원어치를 주문했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대비 태세 발표와 SNS의 불안 분위기가 엇갈리는 만큼, 비축 행렬은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와 남북 군사당국 회담 응답 여부에 따라 강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합성 이미지 유포가 계속될 경우 온라인 불안이 오프라인 구매로 번지는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