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묘 앞엔 '박근혜 탄핵 가결' 신문이 있었다

2017-01-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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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

"탕, 탕!"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 연회장의 단란한 분위기는 총성 두 발로 깨졌다. 

두 사람이 쓰러졌다. 한 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 한 명은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박 대통령 오른쪽 가슴과 차 실장 오른쪽 손목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동석한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은 연회장 구석으로 피신했다.  

총은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쏜 것이었다. 김 부장은 연회장을 나와 부하 박선호 실장을 불렀다. 권총 마지막 한 발이 불발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총을 줘" 김 부장은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쓰러진 박 전 대통령 오른쪽 머리에 총을 겨눴다. "탕!" '확인 사살'이었다.  

차 실장은 조금 여력이 남아 있었다. 연회장 안에 있는 문갑을 들고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탕!" 김 부장이 쏜 마지막 한 발이 차 실장 복부를 관통했다. 차 실장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대통령 최측근이자, 정부 핵심 기관인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김재규 부장이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살해한 것이다. 이른바 '10·26사건'이다. 

지난 16일 오전 김 부장 묘소가 있는 경기 광주시 오포읍 엘리시움 공원묘원을 찾았다. 문형산(497m) 기슭을 공원처럼 꾸며 1971년 개장한 현대식 묘지다. 김 부장은 10·26사건 7개월 뒤인 1980년 5월 24일 내란죄 등으로 부하 4명과 함께 사형대에 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비밀리에 이 곳으로 옮겨졌다. 

김 부장 묘소는 묘지 꼭대기(360m) 한 귀퉁이에 처박힌 듯 조성돼 있다. 그의 시신을 옮긴 이들이 정해준 위치다. 묘원 관계자는 "일부러 저기 묻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묘소로 향하는 길은 실제로 매우 가팔랐다. 심한 곳은 경사가 60~70도쯤 돼 보였다. 가다 서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눈까지 내려 더 힘들었다. 

김재규 부장 묘소로 올라가는 길은 실제로 매우 가팔랐다 / 이하 위키트리

 

심한 곳은 이렇게 경사가 60~70도쯤 돼 보였다

김 부장 묘소를 찾는 이들은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해 11월부터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묘원 관계자는 "일주일에 2~3팀 정도가 묘소를 찾는다. 40~50대가 가장 많고, 30대 초반도 보인다"며 "그 전에는 1년에 1팀이 찾을까 말까 했다"고 덧붙였다. 

묘원 앞에서 38년째 꽃장사를 하는 권혁철(71) 씨도 "30대 젊은 사람들과 40~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권 씨는 "김 부장 묘소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언제는 누가 김 부장 묘소 위치를 묻길래 '저기로 가면 된다'고 했더니 '왜 장군이라 안 부르냐'며 혼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묘원 입구를 따라 약 50분 만에 도착한 묘소는 비교적 깔끔했다.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난장판'일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조경수가 에워싼 묘소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무덤은 작은 경차만 했다. 응달진 쪽엔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고, 그 반대편엔 마른 풀이 솟아 있었다. 마치 '국사범(국기문란사범)'과 '민주화 투사'라는, 그에 대한 극과 극의 평가를 나타내는 듯했다. 

작은 경차 만한 무덤 한 편에는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반대편엔 마른 풀이 솟아 있었다. 마치 '국사범(국기문란사범)'과 '민주화 투사'라는, 그에 대한 극과 극의 평가를 나타내는 듯했다

가까이 가 묘비를 살폈다. 훼손된 곳이 많았다. 한자 '의사(義士)'와 '장군(將軍)'은 누군가가 파냈고, 친지 이름이 적힌 묘비 옆도 마찬가지였다. 무덤 앞에 석상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라는 내용의 김 부장 유언이 적혀 있었다. 일부는 무슨 글씨인지 모를 정도로 닳아 있었다. 김 부장 유족은 "이것도 역사의 일부분"이라며 그냥 놔뒀다고 한다. 

묘비 앞에 붙어 있는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 

 

석상에 적힌 김 부장 유언 일부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묘비 앞면에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붙어 있었다. 바람이 불자 을씨년스레 나부꼈다. 석상으로 돌아오니 10·26 당시 김 부장이 마셨다는 양주병과 "대국적으로 살겠다"는 스티커가 보였다. 김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하며 했다는 말("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을 패러디한 걸로 보였다. 

석상 위에는 "박근혜 무조건 즉각 퇴진!"이라고 적힌 손 푯말, 박 대통령 탄핵 기사가 실린 신문 1면이 보란듯이 펼쳐져 있었다. 완전히 다른 두 세력의 흔적이 '김재규 묘'라는 한 공간에서 머무는 듯했다. 

김 부장이 10·26 당시 마셨다는 양주 병과 그의 영정. 영정 앞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사가 1면으로 배치된 신문이 펼쳐져 있었다 

김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하며 했다는 말("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을 패러디한 걸로 보이는 스티커

현재 김 부장 묘소는 그의 수행기사로 일했다는 70대 남성이 관리한다. 요새는 고령으로 자주 찾지는 못한다고 한다. 대신 묘원 직원들이 한 주에 1~2번 꼴로 묘소를 치운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며 청소 횟수가 늘었다. 묘소 유지비는 김 부장 부인 김영희(87) 여사가 부담한다. 

묘원 관계자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찾아와 '김 부장 묘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며 "예전에는 김 부장 종친회 사람들, 지인들이 기일 때나 오는 게 전부였다. 솔직히 놀랍다"고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여태까지 김재규는 '아주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돼 왔다"며 "하지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아버지 박정희와 닮은꼴이었다는 걸 젊은 세대가 알게 됐다. 그래서 유신 정권을 끝낸 김재규를 추모하는 열기가 나타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 평론가는 "(심지어)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들마저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걸 보면서 실망이 커졌다. 유신 체제때 벌어진 문제도 새삼 알게 됐다"며 "또 (최순실 씨 아버지) 최태민을 김재규가 안 좋게 여긴 점 등이 알려지며 재평가 분위기가 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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