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잡고 신부 입장하고 싶다던 20대, 8명을 살리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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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먼저 배려하던 막내딸의 마지막 선택
갑작스럽게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은 22세 여성이 장기기증으로 8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간호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싶었던 그는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생명나눔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고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2월 23일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전수연 씨(22)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8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고 5일 밝혔다. 전 씨는 심장과 폐, 간, 양쪽 신장, 양쪽 안구 등을 기증했다. 피부를 비롯한 인체조직도 기증해 다른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줬다.
전 씨는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료진의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 가족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황에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부모는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가족들이 장기기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 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했다. 딸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누군가의 몸에서 심장이 계속 뛰고, 딸이 기증한 눈으로 다른 사람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족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기기증은 회복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 심장이나 폐, 간, 신장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환자들은 이식을 통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안구 기증은 각막이식 등을 통해 시력을 잃은 환자들의 시력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전 씨는 장기뿐 아니라 피부 등 인체조직도 기증했다. 인체조직 기증은 피부나 뼈, 혈관 등 이식 가능한 조직을 다른 환자의 치료에 사용하는 것이다. 화상이나 외상 등으로 조직이 손상된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 재료로 활용된다.

아픈 언니 위해 늘 양보했던 막내딸…"일찍 철이 들었다"
전 씨는 가족들에게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누구보다 속 깊은 막내딸로 기억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앞세우기보다 가족의 상황을 먼저 살피는 성격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병을 앓아 온 한 살 터울 언니를 배려하며 성장했다.
언니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가족들은 많은 시간과 정성을 치료와 돌봄에 쏟아야 했다. 전 씨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양보하려고 노력했다. 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도 컸다.
어머니 정영순 씨는 딸이 어린 나이부터 가족을 배려하며 자랐다고 회상했다. 정 씨는 "언니가 아프다 보니 수연이가 일찍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나에게는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딸이었다"고 전했다.
전 씨는 단순히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막내딸이 아니라 어머니가 고민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 같은 딸이었고, 가족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은 전 씨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장기기증을 결정한 부모에게도 이러한 딸의 성품은 중요한 의미로 남았다. 평소 가족을 배려하며 살아온 딸이 마지막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게 된 것이다.
제빵 배우고 미용사 자격증까지…마지막 꿈은 간호사
전 씨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제빵을 배우며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이후 미용사 국가자격증도 취득하는 등 다양한 진로를 탐색했다.
최근에는 간호조무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은 뒤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었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병원과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와 회복을 돕는 의료인이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간호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전 씨는 이를 위해 단계적으로 자격증을 준비하고 학업을 이어가려 했다.
전 씨가 간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 더욱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았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을 갖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던 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간호사가 되겠다는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전 씨는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제빵과 미용을 배우고 간호 분야까지 도전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고 있었다. 가족들은 딸이 앞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일들과 이루고 싶어 했던 꿈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전했다.

"아빠 손잡고 결혼식 들어갈 거야"…끝내 이루지 못한 약속
전 씨에게는 직업적인 목표 외에도 가족과 함께 이루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전국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여행 일정이나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어머니와 딸만의 시간을 보내며 전국 곳곳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전 씨에게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은 꼭 해보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아버지와 나눴던 약속도 있었다. 전 씨는 훗날 결혼하게 되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고 싶어 했다. 평소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주던 아버지에게 오래 건강하게 살아달라는 말도 자주 했다.
전 씨는 아버지에게 "결혼할 때 손잡고 들어가야 하니까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딸의 결혼식에서 함께 걸어갈 날을 기다렸을 아버지에게도 잊기 어려운 말로 남았다. 그러나 전 씨는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가족들 곁을 떠났다.
어머니는 딸이 가족과 함께 계획했던 일들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평생 마음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함께 여행을 떠나지도 못했고, 아버지와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가족들에게는 일상 속에서 나눴던 작은 약속들이 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8개월 만에 전한 마지막 인사
전 씨의 가족은 장기기증 이후 약 8개월이 지나 딸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딸을 잃은 슬픔은 여전하지만, 전 씨가 남긴 생명나눔의 의미가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머니 정영순 씨는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정 씨는 "수연아,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여기서 못 했던 것들 마음껏 펼치면서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루지 못했던 꿈들을 떠올리며 딸이 더는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이어 "언니 걱정도, 엄마 아빠 걱정도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전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의 바람을 뒤로 미뤘던 딸에게 이제는 가족 걱정 없이 원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사랑해"라고 인사했다. 22년 동안 함께한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전한 말에는 딸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담겼다.